[문학][한국문학] 김영하 단편 흡혈귀, 피뢰침. 환상소설의 리얼리티 책, 읽는다. 리뷰,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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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는 내용누설과 주관적인 해석이 있습니다.
 작품의 줄거리나, 결말, 반전 요소 및 작품 내용이 있으므로, 내용 누설을 원하지 않는다면
 뒤로 가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또한 주관적인 생각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어디까지나 참고로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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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
민지 시절의 환상소설의 모습은 좌절스러운 현실에서 도피하거나 저항하기 위해 써지곤 했다. 이때의 환상소설들은 환상이 현실에 얽매여 있기에 작가가 써낸 '환상'이 '현실'과 분리되어 있는 모습을 보인다. 확연히 다르게 보이는 환상은 현실과 뚜렷하게 비교되어, 현실의 비참함과 척박함을 강하게 느끼게 한다. 현실을 표현하기 위해 환상을 끌어들인 이 구성은 리얼리즘의 모습이 드러난다. 환상과 현실을 비교시켜 역으로 비참함을 강조했던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환상소설의 모습은 다르다. 현대의 환상소설은 환상과 현실이 동등한 위치에 있는 형태를 취해, 두 대상을 잘 구별할 수 없는 구조를 하고 있다. 작가는 만들어낸 허구인 환상 속에 현실 속에 있는 요소들과 자세한 묘사와 여러 가지 방법들을 통해 환상을 현실처럼 보이게 한다. 이러한 구성방식을 '환상적 리얼리즘'이라 말한다.


김영하의 단편 '흡혈귀'는 이렇게 시작된다.

 지난 해 펴낸 장편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때문에 가끔 이상한 전화나 편지를 받을 때가 있다. 그 소설에서는 자살 안내라는 좀 특이한 일을 하는 사람이 화자로 등장하는데, 독자들 중에는 작가인 나와 그 자살 안내인을 같은 사람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중략)
"김영하씨 댁인가요?"
"전데요. 누구시죠?

 
작가가 쓴 소설은 픽션이며 허구다. 그것이 아무리 현실을 바탕으로 한다고 해도 소설에서 현실을 완벽하게 그릴 수는 없다. 작가의 생각과 주관이 들어가기 때문에 객관적인 현실을 있는 그대로로 나타내기는 어렵다. 김영하는 이를 역으로 이용한다.
 작가는 본문 안에서 자신이 작성한 소설과 똑같은 소설을 지은 서술자를 등장시킨다. 첫 도입부로 인해 독자는 소설 속의 '김영하'와 이 소설을 쓴 '김영하'를 혼동하게 된다.
 서술자는 작가가 쓴 실제 장편소설을 언급한다.  '김영하'라는 이름을 직접 밝히는 대화는 결정적으로 쐐기를 박아버리는 대사라고 볼 수 있겠다. 이 대화를 통해 독자에게 소설 속의 김영하는 현실의 김영하와 동등한 힘을 가진 것처럼 느끼게 된다.

 원고나 청탁이나 기획서가 아닐까? 출판사 봉투가 아닌 걸로 봐선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나중에 천천히 보자. 처음에는 그저 그렇게만 생각하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후략)
 그러다가, 지난 10월 16일, 친구의 생일이어서 간단하게 술을 한잔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이러한 일상적인 부분은 소설 속의 김영하의 힘을 강화시켜주고 있다. 작가가 겪을 법한 일을 제시하고 있는 이 부분은 소설 속 김영하의 '리얼리티'를 강화해 이 인물이 말할 앞으로의 사건을 현실 속에 벌어진 사건과 같이 느끼게 한다.
 단편 흡혈귀의 구도는 흥미로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작가 김영하가 의도적으로 만든 서술자를 통해 독자들에게 착각을 부여한 점과 김희연이 자신의 남편이 쓴 흡혈귀라는 시나리오를 통해 남편이 진짜 흡혈귀라고 착각한 점은 구조적으로 상통한다. 독자가 착각을 한 것 처럼 김희연도 착각을 하기 때문이다.
 
소설 속 서술자는 현실의 김영하와 독자에게 동등한 힘을 얻었다. ‘소개하기로 하자'라고 직접적으로 서술자는 독자에게 말을 걸어온다. 독자는 갖가지 요소들로 인해 현실의 김영하와 소설의 서술자를 구분하지 못하고, 현실의 김영하가 소설 속에 있다고 착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상태에서 언급되는 김희연의 편지가 리얼리티를 가질 수 있는 점은 당연한 결과다. 작가 김영하가 겪었던 일이라고 독자는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희연은 소설 속의 인물이지만, 서술자에 의해 현실에 있는 인물인 것처럼 ‘현실성’을 가지게 된다. '베르사유의 장미'와 곳곳에 등장하는 실제 김영하의 작품, 실제 작가의 작품들이 언급되는 점은 이 점을 더욱 강화시켜 준다.
 또한 서술자가 김희연의 남편을 알고 있으며, 자신의 지인이라고 말하는 점으로, 리얼리티는 김희연의 남편까지 이어지고 있다
 작가는 '리얼한'정보를 통해 환상을 강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첫 문장부터 맞춤법에 맞지 않는 단어들이 눈에 띄었다. 그 점이 글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기는 했지만, 문장은 의외로 간결하고 산뜻했다. 다 읽고 난 후의 내 감상은 나중에 밝히기로 하고, 이 흥미로운 편지를 먼저 소개하기로 하자. 몇 군데 의미가 연결되지 않는 문장은 내가 손을 보았고, 맞춤법이 틀린 곳도 고쳤다.(후략)

 저는 스물일곱 살의 여자입니다. 72년생이죠. (중략) 제 이야기를 잠깐 할까요. 여느 소녀들처럼 어린 시절엔 재미있는 소설과 만화를 보며 자랐습니다. '베르사유의 장미'같은 순정만화나 하이틴 로맨스…….(후략)

 참고로 말하면 나는 그녀의 남편을 알고 있다. 그는 내 동료 문인이며, 그녀 말대로 내 소설에 대한 평론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가 흡혈귀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제 좀 유심히 보아야겠다.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후략)

…….읽을 수 없이 낡아빠진 고서 묶음들. 일제 강점기의 사진들. 그중에서 몇 장의 사진은 단체사진이었는데, 꼭 한 명의 사진만은 예리하게 칼로 잘려나가고 없었습니다. (중략) 저는 그게 제 남편이라고 확신했습니다.(중략) 저는 뒷면을 보았습니다. '광무 3년 칠월 열하루'라고 적혀 있고, 그 아래에는 박춘식, 이분이라고 초서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남편의 그때 이름은 박춘식이었던 거지요.(중략) 그 때 저는 문득 시몬 드 보부아르의 '인간은 모두 죽는다.'라는 소설을 기억해냈습니다. 그 소설은 선생님의 단편 '도드리'에서 잠깐 언급되기도 했지요.

  김희연은 자신의 남편을 의심해 그의 서가를 뒤져 의심스러운 정보들을 찾아낸다. 김희연이 말하는 역사적 정보와 실제 존재하는 작가와 소설들은 독자들에게 또 ‘리얼리티’를 안겨준다. 소설 속의 서술자인 김영하가 얻은 리얼리티는 김희연에게 이어졌다. 김희연 또한 김영하와 같이 독자들에게 객관적으로 보이는 정보를 제시해 리얼리티를 안겨주고 있다. 이렇게 계속 이어지는 리얼리티는 독자에게 소설 속에 일어나는 환상속의 허구들이 진짜로 있었던 일인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힘을 가진다.

 한편, 또 다른 단편인 '피뢰침'에는 한 여자가 낙뢰를 맞는 모임인 '아디드'에서 겪었던 일을 말하고 있다. 이 소설의 서술자는 '흡혈귀의 서술자 같지는 않으나, '흡혈귀'에서 가지는 구성방식을 따라간다.

 처음 그 모임에 관해 들었을 때의 기분을 뭐라고 해야 할까. 쌍둥이였다는 사실을 다 크고 나서야 안 기분이랄까. 반가우면서도 어딘가 불편한, 삶의 기저가 아주 천천히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누구나 살아가다 보면 한 번쯤 잊지 못할 경험을 한다. 문제는 그 경험이 아주 짧고 강렬했을 때 발생한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디테일은 부정확해지고, 나중엔 그런 일이 정말로 있었나 싶은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중략)

 그러나 내 경우는 조금 달랐다. 그 짧고 강렬한 순간이 지나가고 난 후 까닭 없이 죄의식을 느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여자 아이들이 그렇듯, 나도 어떤 사고가 발생하기만 하면 그게 내 잘못이라는 생각부터 들었다.(중략)....그 일이 정말로 일어났던 것인지 의문스러워졌다. 게다가 고등학교 시절은 정신없이 지나가버렸다.(중략) 그러면서 나는 어느새 그런 놀라운 경험을 했었다는 사실을 차츰 잊어갔던 것 같다.
 어쩌면 잊은 게 아니라 묻어뒀던지도 모른다. 무의식 저 깊은 곳에 말이다.(후략)


 '피뢰침'은 서술자가 자신이 앞으로 말할 과거의 일을 독자가 공감을 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유도한다. 자신이 겪었던 환상적인 그 사건을 이야기하기 전에 상당한 뜸을 들이는 모습은 정말로 놀라웠던 '일'이라는 점을 독자에게 느끼게 한다.

"저 뇌운에서 먼저 선도뇌격을 때려서 그게 대지에 닿으면 다시 복귀뇌격을 되쏘는 겁니다. 그 시간이 너무 짧아서 우리 눈엔 한 번 치는 걸로 보이지만요."
...어떤 이는 번개에 관련한 역사적 사실을 수집하고 있었다. 1725년 5월 벤자민 프랭클린의 기념비적인 연 실험 정도는 기본이었고, 서양의 중세, 심지어 '조선 왕조 실록'에 나타난 관련 자료도 모으고 있었다.

 중간 중간에 나오는 낙뢰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들은 서술자가 겪었던 일의 리얼리티를 강화시켜 준다. 자신이 겪었던 일에 객관적 정보를 끌어오는 면은 '흡혈귀'에 나왔던 구성방식과 같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전화기를 통해 아주 미세한 전류가 내 정맥을 타고 흘렀다. 그에 따라 내 몸도 부들부들 떨려왔고, 귓속에선 윙윙거림이 그치지 않았다. 몸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몸은 오랜 주술에서 풀려나는 미라처럼 천천히 먼지들을 떨어내면서 내가 잊고 있었다고 믿어왔던 그 때 그 순간의 현상들을 재현해내고 있었다.(후략)

 자갈밭에 엎드린 채로 나는 오줌을 지렸던 것 같다. 부끄러웠다. 때마침 죽어서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그 순간 하늘이 환해지면서 다시 벽력 소리가 귀청을...(중략)

 ....그의 몸이 요동하며 천천히 무너지는 것을, 그리고 그 순간 내 몸 구석구석 깊은 곳의 온갖 체액들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나는 허물어졌고, 허물어진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오줌을 누었다. 질척한 공기엔 강렬한 락스 냄새가 팽만했다.(중략)

 서술자는 과거를 이야기할 때 장황하고 자세한 이미지적인 묘사를 사용한다. 이미지적인 묘사는 독자에게 서술자가 겪었던 일이 겪었던 것처럼 느끼게 한다. 독자는 서술자가 제시하는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그리게 된다. 독자는 서술자의 느낌을 보면서 설득받고 있다. 과거의 사건을 지나칠 때마다 서술자 자신의 그 때의 느낌과 생각을 상당히 공들여 자세히 묘사한다. 때문에 ‘피뢰침’의 전개는 느리다. 긴 묘사와 독백을 통해 서술자는 독자에게 그 때 느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전달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피뢰침의 서술자에게는 흡혈귀의 서술자와 같이 특수한 정보를 가지지고 있지는 않으나, 자신이 겪었던 과거의 일에 대해 길고 감각적인 묘사를 통해 리얼리티를 가진다. 이렇게 볼때, 피뢰침은 ‘흡혈귀’와는 형태가 다른 환상적 리얼리즘을 가지고 있다.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이 상당히 사실적인 묘사와 가상의 역사를 통해 진짜 같은 환상을 만든 것처럼, '피뢰침'은 한 순간의 강렬한 느낌에 공을 들여 묘사함으로써 리얼리티를 얻었다. 



 흡혈귀, 피뢰침 이 두 단편은 작가 자신이 쓴 소설의 내용이나, 역사기록, 과학적인 이론을 연결시키는'상호텍스트성' 을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얻은 리얼리티를 ‘흡혈귀’는 특수한 서술자를 통해 강한 리얼리티를 강화하고, ‘피뢰침’은 서술자가 겪었던 길고 긴 묘사를 통해 리얼리티를 강화한다.공통점은 객관적인 정보를 기본으로 해서 자신이 겪었던 일에 리얼리티를 얻어냈다는 점이다. 리얼한 소재를 통해, 허구적인 소설의 세계를 넓혀가는 구성을 취하는 방식에 있다.
 또한 미완적인 느낌을 주는 결말이 아닌 서사를 유지하는 일상에서 시작해서 환상을 회고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회귀의 방식을 택한다. 주인공들은 변함없는 일상에 있고, 자신에게 있었던 환상을 독자에게 고백하고 회상한다. 이야기의 끝은 끝에서 다시 시작으로 돌아간다. 그들은 환상적인 일을 겪었지만 그것이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지는 않았다. 작품은 인물이 어떻게 되었는지, 환상의 진위여부에 대해 다루지 않는다. 그저 그런 사건이 있었다고 회상할 뿐이다. 독자는 환상을 말하는 서술자를 의심하면서도 '김희연이 어떻게 되었나?' '아디드의 J와 서술자는 어떻게 되었나?'를 궁금하게 된다. 환상은 의심받지만 리얼리티를 잃지 않고 독자의 안에서 이어진다.

 
단편 흡혈귀의 환상을 인식하는 방법은 쉽다. 소설의 개념을 생각해보자. 소설 안에 있는 이야기는 결국 작가에 의해 쓰인 이야기에 불과하다. 소설 속의 서술자와 작가 김영하는 비슷하게 보이지만 명백히 다른 인물이다.

 그 소설에서는 자살 안내라는 좀 특이한 일을 하는 사람이 화자로 등장하는데, 독자들 중에는 작가인 나와 그 자살 안내인을 같은 사람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이 문장은 흡혈귀의 환상을 깰 수 있는 단서다. 독자가 환상을 느끼는 이유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인물 설정 때문이다. 이 인물설정을 뒷받침하기 위해 객관적인 정보를 불러왔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위 문장은 아이러니하다. 독자는 이 문장을 통해 소설 속의 서술자를 현실의 김영하가 회고를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허구와 의도적으로 작가에 의해 짜인 것을 생각하고 본다면 이 문장은 그저 허구인물의 회고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김희연의 경우도 이와 같다. 김희연은 남편의 특이한 행동을 일반인에 범주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해 그가 인간이 아닌 흡혈귀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남편이 지은 시나리오 '흡혈귀'의 설정을 자전적 이야기로 착각한다.


 한 남자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어느 날 삶이 무한정 계속될 거라는 망상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죽지 않는 사람이라고 믿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임진왜란 당시 고니시 유키나가 휘하의 일본군을 따라온 네덜란드 군목에 의해 흡혈귀가 되었다고 믿게 됩니다.

 
'고니시 유키나카'와 '임진왜란' '네덜란드'와 같은 언급은 이야기를 역사적으로 있었던 일처럼 보여주기 위한 정보다. 몇몇 독자들은 이것을 작가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설정이라고 인식할 수 있으나, 김희연의 경우에는 다르다. 그는 자신의 남편의 행동 하나하나가 어딘가 비틀려 있다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착각을 일으켰다. 남편이 느끼는 끝없는 허무감,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 그런 요소는 김희연이 남편이 흡혈귀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불러왔다. 이 추측은 앞서 제시한 '고서 묶음''일제 강점기의 사진'들이 확신을 안겨주게 한다.
 김희연의 모습은 뒤로 갈수록 심각해진다.





 남편은 흡혈귀였던 겁니다. 오, 맙소사.(중략) 지금까지의 일을 찬찬히 돌이켜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 일투성이였습니다. 섹스부터가 그랬습니다. (중략) 또 남편은 모르는 것이 없었어요. 조선시대 고전문학부터 영미문학 신소설부터 최근의 현대소설까지 읽지 않은 작품이 없었습니다.(중략) 어떻게 서른다섯의 남자가 그 많은 것을 다 읽을 수가 있었을까요? (중략)김치를 좋아하지 않는 한국 사람을 보신 일이 있습니까?(중략)그가 보는 영화는 또 어떤 줄 아세요?(중략) 더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기도 했습니다. (중략) 뭐냐 하면 남편이 자고 일어난 베개 근처엔 단 한 올의 머리카락도 없었다는 거죠.

  이러한 이해는 큰 착각에 불과하다. 그녀가 이야기하는 것들은 자신이 알고 있던 일반인에 대한 기준에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남편의 행동이다. 김희연은 환상 속에 빠진 상태에서 자신이 느끼는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뒷받침되는 정보들을 말한다. 하지만 이 정보들의 본질은 '그럴 수도 있지'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는 그런 정보에 불과하다. 환상 속에 이미 깊게 들어간 김희연의 눈에는 모든 것이 환상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당신이 흡혈귀라는 걸 알아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도요."
"당신의 시나리오는 자기 이야기지요?"
"많은 독자들이 작가와 화자를 혼동한다."
"당신 서재에 있는 저 관은 뭔가요? 저거야말로 당신이 흡혈귀라는 피할 수 없는 증거에요."

  김희연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범주의 것으로 내몰고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고 자신이 생각한 것만이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가치와 삶의 기준이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고 강요한다.

.... 남편이 흡혈귀인 이상, 불멸하는 이상, 더 이상 그와 살 수 없습니다. 저는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아이를 낳고 남편과 함께 팝콘을 먹으며 할리우드 영화를 보고 주말이면 놀이동산 가는 삶 그런 삶을 살고 싶어요. 하지만 세상 모든 것에 흥미를 잃어버린 흡혈귀 남편이 흡혈귀인 이상 불멸하는 이상, 더 이상 그와 살 수는 없습니다. (후략)

"세상의 모든 흡혈귀들은 거세당했다. 세상은 빛으로 가득하다. 어디에도 숨을 곳은 없다. 우리는 흡혈의 자유와 반역의 재능을 헌납 당했고, 대신 생존의 굴욕만을 넘겨받았다.......

 왜냐하면, 내 생각엔 아무래도 바로 그녀가 흡혈귀인 것만 같기 때문이다. 이전 그저 내 짐작일 뿐이다. 짐작.(*)

 김영하는 남편의 직업이 '작가'라는 점을 통해 작가들이 펼치는 표현력들이 쉽게 평가하는 현시대를 비판한다. 이것은 작가에 국한된 것만이 아니다. 작가라는 직업은 하나의 예일 뿐이다. '김희연'이 역으로 '흡혈귀'라고 서술자가 말하는 부분은 누군가를 강제로 감염시켜 자신과 똑같은 사고를 하도록 강요하는 점을 내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우습게도 시계를 본 것이었다. (중략) 그러나 시계는 보이지 않았다. (중략) 그때 다시 텐트가 흔들릴 정도로 강한 벼락이 쳤다. 그재서야 아빠가 부스럭거리며 일어났고, 나는 엄마와 아빠 사이로 기어들어가 몸을 웅크렸다.  그때부터 그 게스시계는 작동을 멈췄다. 10시 32분 24초. 그 후로 나는 가끔 그 시계를 꺼내본다. 그때마다 오줌이 마려웠다.

……. 세 번의 연구 모임을 마쳤고, 이미 '전격 세례' 경험이 있으므로, 나는 그날 모임 이후 바로 정회원으로 승격되었다. 게스 시계는 증거로 제출되었다. 정회원들은 그 시계를 유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경의를 표하며 살펴보았다. 

 피뢰침의 감각적이고 사실 같은 묘사는 리얼리티를 안겨주기도 하지만 믿을 수 없는 부분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분명 시계는 사라졌다고 서술자는 말했다. 그런데 시계는 다시 나와 작동을 멈췄다. 이 시계는 후에 낙뢰를 맞았다는 증거로서 아디드의 회원들에게 제시된다.

눈을 감고 그날의 기억을 되살려보려고 애써보았다. (중략) 아빠를 따라온 가족이 남한강, 북한강이었나? 여하튼 돌이 굵은 강변으로 가서 텐트를 쳤다.(중략) 아, 이 부분이 확실하지 않다. 다른 사람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조금 망설였던 것 같고, 오줌을 눈 것 같기도 하고, 누기 전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기묘한 기분에 휩싸였던 기억이 났다.

 서술자의 묘사는 불확실한 면이 있다. 서술자의 모습은 이중적이다. 감각적이고, 자신이 느꼈고 생각했던 것을 자세하게 표현하지만 정작 자신이 낙뢰를 맞았던 어릴 적의 기억은 불확실하다. 장소가 북한강인지, 남한강인지도 긴가민가하며, 자신이 오줌을 누었는지 안 누었는지도 잘 생각해내지 못한다.
 또한 이 단편에서는 객관적으로 보이는 허구적 정보를 소설 안에 심어놓기도 했다.
 
 "물론 역사적 사례도 있습니다.(중략) 일본 에도 막부 시대의 ‘무라야마 겐이치로’라는 사무라이는 산에서 한 번, 그리고 들에서 한 번, 들고 다니던 일본도 때문에 똑같은 일을 당했지만, 멀쩡히 살아서 에도 막부의 중책까지 맡아서 일하다 늙어서 죽었습니다. 저 역시 네 번의 경험이 있습니다."

 

 묘사를 보면 에도 막부 시대의 '무라야마 겐이치로'라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이 정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정보다.
 '일본 검'에 의해 번개를 맞은 사람의 기록은 일본사에 전해지는 기록이다. 하지만 이 사람의 이름은 '타치바나 도세츠(立花 道雪)다. 이 장수는 뇌신(雷神)'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장수로 젊은 시절 벼락을 맞아 하반신 불수가 되었다. 뇌신이라는 별명은 여기서 유래했다. 벼락을 맞고도 죽지 않은 이 사무라이 도세츠가 쓰던 칼은 뇌신을 베었다고 해서, '뇌절환(라이키리마루~雷切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앞서 진짜 있었던 프랭클린 벤자민의 실험은 진짜지만 이 정보는 왜곡되어 있다.
 

 



 허구적 이야기인 소설이니 정보를 왜곡해도 별 상관은 없다. 하지만 정보의 사실여부가 아니라, 진짜 있었던 역사적, 과학적 정보에 왜곡된 ‘정보’를 넣어 실제로 '무라야마 겐이치로'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독자를 믿게 하는 힘이다. 사실 속에 거짓말을 섞어 넣어 거짓말도 사실처럼 느끼도록 한 것이다.
 
자세하며 장황하고 감각적인 단어로 자신의 느낌을 묘사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낙뢰를 맞기 전의 기억을 떠올리지 못한 서술자와 사실에 교묘하게 끼어들어간 왜곡된 정보는 ‘불확실하다’는 점에서 서로 닮아 있다. 이런 불확실한 점은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 이미 제시되었었다.
 누구나 살아가다 보면 한 번쯤 잊지 못할 경험을 한다. 문제는 그 경험이 아주 짧고 강렬했을 때 발생한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디테일은 부정확해지고, 나중엔 그런 일이 정말로 있었나 싶은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후략)

  그녀는 이미 이야기의 시작 전에 자신이 말하는 것들이 왜곡되어 있을 수 있음을 밝혔다. 독자는 그녀의 이야기에서 리얼리티를 느낀다. 하지만 그것은 시간이 너무 지난 불확실한 정보들이다. 애매한 것을 떠올리며 그것을 이야기하려고 하니 자꾸 덧붙인다. 그러니 장황해지고, 불확실해질 수밖에 없다. 그녀의 사실적이고 감각적인 묘사들은 리얼리티를 불러오면서도 위화감이 들게 하는 양날의 검이다.

"우리는 다시 전격을 받으러 모인 겁니다. 그뿐입니다.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닙니다."

"아닙니다. 같습니다. (중략) 하지만, 전격도 전격 나름.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진짜가 찾아옵니다. 그때, 아주 잠깐, 다른 세상, 다른 나를 보는 겁니다. 나는 내 몸과 대기와 대지의 주인이 됩니다. 아주 잠깐.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한 사람의 퍼포머인 셈입니다. 언젠가 지극히 완벽한 공포와 전격을 일치시켜 자아를 뛰어넘은, 그 경지에 이를 때까지 나는 전란운을 쫒아 다닐 겁니다."

 J의 대사들은 피뢰침의 주제를 명확하게 담고 있다. 피뢰침에서 김영하는 과거에 겪었던 환상적인 경험, 자기 자신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린 강렬한 경험을 쫓는 사람들을 등장시킨다.. 비루하고 고루한 일상 속에서 그들이 겪었었던 과거의 환상은 변색되고, 진짜 있었던지 모르는 일로 변해간다. 아디드의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특별하다고 느낄 수 있었던 때는 낙뢰를 맞았을 때다. 그들은 그 때 느꼈던 강렬한 것을 다시 한 번 맛보려고 한다.
  어렸을 때 생각했던 순수함, 환상을 사람들은 잊어버리고 더 이상 쫓지 않게 된다. 안개의 저편으로 사라진 과거에 대한 것을 현대인은 자신의 일상 속에서 잊어버린다. 김영하는 환상을 쫓는 어떻게 보면 무모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환상을 갈구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그렸다. 서술자에게 불확실한 묘사를 하게 한 것은 현대인들이 그 환상을 뚜렷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모습을 그리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영하는 기존의 알려진 방법이 아닌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기법을 통해 대중들에게 문학의 가능성과 새로운 창작방법을 제시하곤 한다. 특히, 단편 흡혈귀에서 쓰인 작가의 파격적인 방법은 소설의 가능성을 느끼게 한다. 그럴듯해 보이는 거짓말을 하려면 사실을 섞어서 거짓말을 하라고 하던가. 현실에서 환상을 교묘하게 섞어 애매하게 만드는 작가의 구성방식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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