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한국문학] 도요새에 담은 자유 책, 읽는다. 리뷰,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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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는 내용누설과 주관적인 해석이 있습니다.
 작품의 줄거리나, 결말, 반전 요소 및 작품 내용이 있으므로, 내용 누설을 원하지 않는다면
 뒤로 가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또한 주관적인 생각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어디까지나 참고로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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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일의 도요새의 관한 명상은 4부작으로 되어 있는데, 각 부마다 초점이 되는 나레이터가 변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동일한 사건과 사물을 해석하는 관점이 변화되는 면이 있다. 1부는 병식, 2부는 병국, 3부는 두 사람의 아버지로 되어 있으며, 마지막 4부에서는 줄곧 지켜왔던 '나'의 사용을 깨고 3인칭복합시점으로 소설을 진행한다. 이는 객관적인 위치에 있는 시점을 제시함으로써, 읽는 독자에게 여태까지 있었던 사건들을 종합하면서 문제를 제기하는 효과를 보이고 있다.
 시점이 바뀌어도 중심이 되는 사건은 계속 진행 중이기 때문에 전개의 밀도감이 떨어지지 않는 구상은 꽤나 흥미롭다. 또한 시점이 바뀐만큼 심리의 표현이나 가치관이 명백히 다르게 제시해 독자로 하여금 햇갈리지 않게 했다. 병국으로 시점이 바뀌었을 때, 환경문제에 대해 자세히 다루는 면이나, 각 부의 초기에 주요 인물들이 자신의 과거에 대
해 회상하는 부분은 인물간의 구분을 확실하게 해주고 있다.
 소설이 발표된 시기가 1979년임을 생각해봤을 때, 시점을 살리는 구성의 특징은 당시 문학작품에서는 볼 수 없던 신선한 기법이었을 것이다. 이 구성을 통해 작가는 중심인물의 내면의 심층화를 통해 시대가 가지고 있는 아픔을 그리고, 사건에 대한 주관성과 단순성을 피하고 있다.
1979년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생태, 환경을 중심으로 한 소설이었기에 이 작품은 문제작으로 취급받고 있다. 환경문제를 중심으로 실향민,물질 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가지를 뻗어가는 이 작품은 주제나 기법 면에서도 그 시대를 앞선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이번 분석은 도요새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을 중심으로 해석해보려고 한다. 폭넒은 주제를 가진 작품이지만 각 인물이 가진 도요새에 대한 근본적 의미는 하나로 집약되는 점이 있다.


 소설 속 사건을 독자에게 말하기 위해서는 말하는 입장에 서 있는 텔러(Teller) 가 필요하다. 이러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서술자'라고 말한다. 독자는 서술자 없이는 소설에서 아무것도 알 수 가 없다. 소설에 있는 것들은 전부 서술자의 힘에 의해 작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술자는 작가에게 부여받은 조건과 능력을 가지고 소설 속의 사건과 인물들을 독자에게 말해준다. 여기서 생겨나는 것이 바로 '시점'이다. 독자는 시점의 말로 소설을 읽게 된다. 작가의 의도에 따라 시점이 가진 힘은 무한할 수 도 있지만, 극히 제한적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전지전능한 신의 위치에서 바라본다면 인물이 생각하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보거나 사건의 맥락을 전부 알고 있을 수 있겠지만, 한 인물로 국한된다면 타인의 생각이나 내면심리는 드러내지 못하고 전부 추측으로만 독자에게 전달될 수밖에 없으며, 사건도 이 초점이 맞추어진 인물이 본 것만을 보게 된다. 제한적인 입장인 것이다. 작가는 시점을 이용해 독자에게 정보를 전달할 때를 조절할 수 있다. 시점은 소설에서 독자에 소설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안내자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인물에게 제한된 시점일 때, 독자가 볼 수 있는 것은 초점의 인물의 행동과 내면심리 뿐이다. 도요새의 관한 명상'의 1부, 2부 , 3부는 이 방식을 가지고 있는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진행된다. 볼 수 있는 것이 제약이 있는 만큼, 독자에게 주어지는 정보의 양은 한정된다. 또한 시점은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관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작품 내에서 등장하는 세 인물은 각자 생각하는 것과 안고 있는 문제가 서로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보는 요소가 있다. 바로 '도요새'다. 각 소설의 예시를 이용해 각 인물에 대한 분석을 하고 그 인물들이 가진 도요새의 의미를 알아보자.

1부 - 병식 -

.... 순간 나는 형을 생각했다. 봄부터 철새와 나그네새에 미친 형이었다. 형은 새처럼 자유인이고 싶어했다. 숫제 한 마리 나그네새가 되고 싶어했다. 과연 형이 새가 될 수 있을까. 새는 커녕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을까. 한마디로 형은 미쳐 버렸다.
.....갈매기들이 털고 간 깃털이 떨어져 내리듯 고요가 가라앉았다. 나는 세운 무릎에 얼굴을 박고 한동안 침묵을 익혔다. 등줄기로 한기가 느껴졌다. 등이 시렸다. 새도 아닌, 그렇다면 나는 무엇인가. 나는 형을 비웃을 수 있어도 나 자신을 알지 못했다. 형은 한때 공붓벌레였다. 나는 형처럼 수재가 못되었다. 공붓벌레도 아니었다. 나는 다만 벌레처럼 살고 있었다.
......형의 피폐한 모습이 순간적으로 나를 두렵게 했다. 어찌 보면 꼭 자살 직전의 그런 몰골이었다. 만약 형이 죽어 버린다면? 그럴 수도 있었다. 형은 더 이상 모든 사람을 실망시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좋은 대학 입학에 연연하는 우리 또래의 후배에게는 더욱 그랬다. 대학 합격이 성공의 보증 수표인지 실패의 부도 수표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 문제를 형이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중략) 형은 한때 나의 우상이었다. 나는 열렬히 형을 존경했다. 그러나 형의 이카로스의 날개는 완전히 퇴화되고 말았다.(후략)

 1부에 해당하는 병식의 이야기는 병국의 환경언급보다도 자신의 내면심리를 그린 것이 대부분이며, 형에 대한 과거의 생각을 드러내면서 자신의 불안을 그린다.
  병식은 새를 통해 병국의 모습을 본다. 병식에게 병국은 한 때 동경의 존재였다. 하지만 병국이 추레한 몰골로 낙향을 한 것을 보고 병식은 실망을 함과 동시에 불안을 가지게 된다. 대학입학이 성공의 보증수표라고 생각했지만 형의 모습을 보고 그것이 정말로 그러한 것인지 의심을 하고 있다. 이는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모르며 고뇌에 얽매여 있는 모습을 나타낸다. 병식은 어머니의 모습과 족제비의 모습에서 자신을 이러한 고뇌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것을 경제적인 수단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 수단을 해결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 '도요새'다.


2부 - 병국 -

 환경문제가 도드라지는 점은 병국의 시점에서 드러나는데, 이는 병국이 새를 통해 자유를 갈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병국의 시점에서 자연문제에 대한 언급은 꽤나 자세하다.

"동진강 하구 삼각주 지역 해수는 말할 것도 없고, 옹포리 개펄 수은 농도가 평균 0.013PPM이야. 허용 농도가 0.005피피엠이니, 허용 기준치 열다섯 배를 초과한 셈이지. 더욱 공해병인 이타이이타이병을 일으키는 카드뮴 함량이 0.016PPM이야."

 미나미타병은 일본 구마모토 현 미나마타 시에 있는 신니치 질소 비료 공장이 아세트알데히들ㄹ 제조하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나온 메틸수은이 함유된 폐수를 미나마타 강에 그대로 배출함으로써 야기된 공해병이었다. 메틸 수은에 오염된 어패류를 장기간 섭취한  현지 주민들이 그 병에 걸리자 앓는 환자가 1천 6백여 명 그 병으로 죽은 환자가 280여 명이나 되었다. 미나마병 증세는 지각 장애, 청각 장애 혀 굳어짐 따위의 중증을 일으키며, 임산부의 경우에는 태아가 그 수은을 흡수했을 때 태아성 미나마타병에........

  앞서 병식의 경우가 자기 자신에 대한 막막함과 가족에 대한 자신의 심정이었다면 병국은 환경문제를 언급하면서 자신의 심리와 가족에 대한 생각을 드러낸다. 각 인물 상이 판이하게 다른 면을 볼 수 있는 예다.

....나는 약육강식의 이 시대에 아직 내가 맡을 일이 어디에 있느냐를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죽음을 거부하면서 삶답지 못한 생존의 늪을 허우적거릴 때 산업화 과정과 환경, 요컨대 이 도시의 생활환경과 자연 훼손이란 문제에 나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동진강 하구 삼각주에에서 새 떼를 만난 것이다. 주눅 들어 지내던 실의의 낙향 생활에 나그네새의 울음이 생명의 찬가처럼 또렷하게 들렸다. 새가 내 머릿속으로 자유자재 날아다녔다. (중략) 나는 도요새를 찾아 헤매었다.(중략) 도요새는 떠남, 이동의 자유와 그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인내, 고통에 관하여 내게 경험담을 재잘거렸다.
 죽음을 거부하면서 삶답지 못한 생존의 늪을 허우적거릴 때, 산업화 과정과 환경, 요컨대 이 도시의 생활 환경과 자연 훼손이라는 문제에 나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병식이한테 말했듯, 나는 정말 새가 되고 싶었다. 새처럼 모든 구속으로부터 나를 해방시키고 싶었다. 내 고통의 원인을 제공한 이 땅을 떠나 멀리로 완전한 자유인이 되어 떠나고 싶은 마음이 나그네새를 볼 때마다 간절하게 사무쳤다.(중략) 인간이 되기를 소원하는 새가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 새와 나를 바꾸고 싶었다. 선택권을 준다면 새 중에서도 시베리아나 저 툰드라가 고향인 도요새가 되어 높게 멀리 날고 싶었다.


"난 새가 될 텐데 왜 바다 속으로 들어가니? 비상하지."

 병국은 학교에서 제적을 당한 뒤, 이웃의 차가운 시선과 어머니와 병국의 눈초리에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으로 나날을 보낸다. 그러다가 동진강 하구 삼각주에서 날아가는 새때를 보고 온갖 것들에게 구속되어 있는 자신보다, 자유롭게 날개를 펼친 새들에겐 자유가 있다고 생각해 그들을 동경하게 된다. 결국 병국의 행동은 자신이 동경하게 된 대상을 지키려고 하는 행동이다. 자유로운 존재, 소중한 존재를 지키는 행동으로 자기 자신의 심리를 회복하려고 한다. 1부의 병식에서 보여졌던 도요새의 상징은 병국에서 좀더 확대되고 있다.

3부 - 아버지 -

...이미 나는 시간이나 쪼아 먹는 한 마리 날개 꺾인 새로 변신하고 말았음을 알았다.

.....사실 나는 개 살을 가르고 나온 자식만큼 새들을 사랑한 점만은 틀림없었다. 갈대숲을 바라보는 둔덕에 도착하여 다리 뻗고 앉으면, 먼저 수백 마리 새 떼들이 아귀아귀 우짖으며 나를 반겼다. 동진읍에 정착했던 그해 가을이던가, 전쟁 전 고향 땅에서 본 도요새 무리를 동진강 삼각주에서 발견했을 때, 나는 마치 헤어진 부모와 동기 간과 약혼녀를 만난 듯 반가웠다.(중략) 새가 고향 땅 부모님이 되고 형제가 되고 어떤 때는 약혼자가 되어 내게 들려주던 그 많은 이야기를 나는 기쁨에 들떠 때때로 설음에 젖어 화답하는 그 시간만이 내게는 살아 있는 진정한 시간이었다.

......지금도 달라진 구석이 없지만 그 시절 나는 산다는 자체에 탈진한 의욕 상실자였다. 사람을 대하는 데 두려움을 느끼는 대인 공포 증세를 보였다. 권태스러운 일과에 진력
을 내고 있었다(중략) 나는 일없이 초조해하고, 사람을 피하고, 그런 나 자신에게 짜증을 냈다. 그럴 때면 어스름 녘 바닷가로 나가 홀로 통음했다. 만취함으로 나는 재활원 얼굴들과 내 일상을 의식에서 지울 수 있었다. 그런 중에 한 가지 소망만은 끊임없이 나를 보채었다. 어서 휴전이 깨어지고 그래야만 고향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그렇게만 되면 나는 옛날의 나를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희망은 차츰 환상으로 변해갔다.

 자신을 '날개 꺾인 새'로 비유하고 있는 것은 자유롭지 못한 것을 표현한 것으로, 고향에 가고 싶지만 가지 못하는 얽매인 모습을 말하고 있다. 이 인물은 도요새가 자유롭게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동경한다. 자유롭게 날아가는 날개를 가진 새를 통해 '아버지'라는 인물은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고향으로 갈 수 있는 자유를 갈망한다.

4부 합쳐진 그림

  각 인물의 시점이 시작될 때마다, 소설은 이 인물이 과거 어떤 인물이었는지, 그리고 현재 어떤 상황에 있는 지를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야 자신이 집착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렇기에 독자는 소설을 읽을 때마다 각 주인공에 대해 새로 생각하게 되고 정보를 고치게 되며 어떤 인물인지를 정확하게 알게 된다.
  4부에서 1부, 2부, 3부에서 잠정적으로 언급되던 사건이 부각되면서 소설은 각 인물의 심리와 생각을 하나로 이어준다. 4부는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바뀌고 있다. 이 1부, 2부, 3부에 걸쳐, 각 인물들의 심리와 상황을 충분히 설명했고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은 공평한 상태를 독자에게 전달한 뒤다. 이러한 구성방법은 작품이 환경문제를 드러내고 있지만 세 인물이 어떤 것에 집착하는 지를 더 중점을 두었다고 생각하게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어째서 작가는 세 인물의 심정을 공평하게 다루었는가? 소설에서 중점을 두어야 할 부분은 여기에 있다.
 각 세 인물이 보고 있는 소재는 '도요새'라는 존재다. 병국은 자유롭게 나는 새를 보고 그 모습에 영향을 받아 자신이 새가 되려고 하고 있고, 병식은 새를 죽임으로써 얽매여 있는 자신의 처지를 풀어줄 수 있는 존재로 보고 있다. 아버지는 자유로운 새를 통해 발이 묶여 있는 자신을 토로하고, 고향으로 가고 싶은 것을 표현한다. '도요새'를 보면서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결국 세 인물 모두 도요새를 동경하고 있으며, 이가 얽매여 있는 자신들에게 '자유'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시점이 바뀔 때마다 중심이 되는 인물의 옆에 있는 인물이 달라짐을 알 수 있는데, 병식에서 이씨와 족제비, 어머니가, 병국은 정배가 있으며, 아버지에게는 강회장이 있다. 세 인물들의 가치관과 생각, 즉 도요새의 의미에 영향을 끼치는 인물들이다. 이 인물들 또한 도요새에 관해서, 또는 인물들이 품고 있는 문제에 관해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는 인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병식과 병국, 아버지의 고뇌는 각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시대가 품고 있는 문제로 봐야 옳다. 여기서 초점을 빈번히 바뀐 의도가 드러난다. 작가는 한 가지 문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다른 문제를 품고 있는 시대를 나타내려고 했던 것이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4부가 필요했다

"자네도 이젠 전문가가 다 됐군."
"돈벌이도 주제 정돈 파악해야죠."
"그건 너무한데. 굼벵이도 밞으면 꿈틀한다는데 아무리 제 돈 주고 부려 먹는 공원이라지만 어디 그럴 수애 있나. 제 놈은 어디 그만한 딸애 안 키우는가 말일세."
"글쎄 말이야.  그러자 검사과 똑똑한 여공 애 둘이 결백이 밝혀질 때까지 맞서자는 의견을 내 농성을 시작한 게지......(중략)
……가게 문 안으로 들어서려다 병국은 멈칫했다.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물론, 히, 힘든 문제지요. 그렇다고 이 세월이 세상 끝날 때까지 갈 건 아니잖아요."
아버지는 엔간히 취해 있었다.
"아무래도 내 평생 통일은 글렀네. 생이별한 처자식은 영영 못 볼 것 같아. 30년을 하루같이 기다려 오다 백발이 다된 마당 아닌가. 사람 목숨도 한계가 있는데, 살면 언제까지 산다고."


 4부는 1부와 2부 3부에 있던 인물들을 한꺼번에 등장시키고 있다. 작가는 4부에서 각각 제시했던 시대의 그림을 나타내어 독자에게 제시한다. 독자는 4부를 통해 1부,2부,3부에서 볼 수 없었던 그림을 볼 수 있다.

"왜 그래? 두루미나 크낙새 같은 보호종이 아닌, 흔해 빠진 잡새 죽였다고 고발할 테야? 날아다니는 새 잡아 박제해서 호구 잇는 건 죄다 되고 돈 많은 놈 허가 낸 사냥총으로 새를 잡아 영양보충하는 건 죄다 안 된다 이 말씀이야?"
병식이 코웃음을 치곤 술을 들이켰다.
"이 지구상에 희귀조가 계속 멸종되는 건 너도 알지? 인간이 새로운 새를 창조해 낼 수는 없어."
"그 개떡 같은 이론은 집어치워 내가 알기론 이 지구상에는 30억이 넘는 새들이 살아. 그중 내가 50마리쯤 죽였다 치자. 그게 형은 그렇게 안타까워? 그렇담 숫제 참새구이도 없애 버리지 뭘.. 가축인 닭도 진화를 도와 하늘로 해방시키자고."


  4부의 이 말다툼을 읽을 때, 독자는 이들이 왜 도요새에 관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싸우는 이유에 대해 알고 있다. 생각이 다른 이유도 알고 있다. 이것이 될 수 있었던 것은 1부와 2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작가가 초점을 계속해서 바꾸었던 의도는 한 시대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독백을 통해 직접적으로 드러내어 그 문제에 대해 독자에게 인식하게 한 것이며, 문제의 소개를 끝낸 다음에 전체적인 그림을 바라봄으로써, 이 문제들이 1979년의 시대가 가지고 있는 문제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였던 것이다. 또한 이 문제를 해결해줄 요소를 '도요새'라는 하나의 존재로 제시했다. 작가는 시대의 문제를 해결해줄 진정한 것이 바로 '자유'라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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