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감성] '매그놀리아' 필연과 과거에 얽혀 있는 상처들 영화, 본다. 쓴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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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는 내용누설과 주관적인 해석이 있습니다.
 작품의 줄거리나, 결말, 반전 요소 및 작품 내용이 있으므로, 내용 누설을 원하지 않는다면
 뒤로 가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또한 주관적인 생각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어디까지나 참고로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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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놀리아는 융의 싱크로니시티라는 개념을 통해 3개의 도시전설을 제시하고 본편을 시작한다. 융은 일종의 의미가 있는 위의 도시전설과 같은 우연의 일치를 설명하기 위해 싱크로니시티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융은 개별적인 인과관계를 가지는 두 가지 사건이 동시에 연속적으로 발생했을 때 이 둘 사이에 어떤 연관관계도 없지만, 실제로는 우연이 아닌 인과적 법칙이 있으며 이는 인간의 마음과 현실세계의 사이에 '싱크로니시티'가 발생하면서 생겨난 것이라 말한다. 이것은 작품의 테마인 우연과 인과율을 설명하기 위한 밑작업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싱크로니시티를 요약하면 '모든 일에는 우연은 없으며, 있는 것은 필연뿐'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지속적으로 '인과율'을 계속 강조한다. 인과율이란, '인과' '원인과 결과'라는 뜻을 담고 있는 '因果'라는 한자에서 법칙 률 '律'이라는 한자를 붙인 것으로, '원인과 결과의 법칙' 즉, '어떤 결과는 반드시 어떤 원인에 의해 일어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어떤 복잡하고 불합리해 보이는 일에도 그 뒷면을 차근차근 해석하고 관찰하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를 잊었지만 과거는 우리를 잊지 않았다.'

 화 속의 인물들은 꽤 많다. 주요인물과 관련이 있는 인물만 하더라도 열 명은 가볍게 넘어간다. 또 각 인물들이 겪고 있는 사건들도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이 인물들이 겪고 있는 갈등의 모습은 서로 비슷한 양상을 가지고 있으며, 최종적으로는 하나의 테마로 연결되어 있다. 군상극의 형태라고 볼 수 있겠다.  이는 영화가 시작될 때부터 오프닝 장면에서 암시되어 있었다. 감독은 지미가 바람을 피웠다는 것, 그가 시한부 인생이라는 점, 어린 퀴즈왕 스탠리의 심정, 도니 스미스의 과거와 현재등등 인물의 이야기를 마치 하나의 사슬처럼 끊지 않고 연출했다. 
 윗 대사는  지속적으로 작품 속 인물들에게 제시되는 대사다. 사람은 자신의 했던 행동에 대해 별 자극이 없는 한 그것을 잊고 지내지만, 그 행동은 과거가 되어 그 사람의 곁에 존재한다. 과거의 일은 계속 영향을 미치지만 우리는 그것이 왜 그렇게 되었는 지 이해하지 못하곤 한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과거의 자신이 했던 일의 결과임도 모른 체. 나중이 되서야 자신이 과거에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고 후회한다.

 
  어린 퀴즈 왕 스탠리의 모습은 과거의 퀴즈왕 도니 스미스와 비교된다. 스탠리는 도니의 과거다. 스탠리는 돈과 명예를 밝히는 아버지에게 내몰려 많은 시간을 공부하고, 기계적으로 퀴즈쇼에 임한다. 스탠리는 힘들면서도 그것이 아버지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노력했다.
 그렇지만, 도니 스미스는 말한다
'누가 그의 인생과 돈을 훔쳤을까요?'그의 부모님? 아버지? 어머니? 이렇게 살도록 두진 않았겠죠. 천재 소년이 어렸을 때 받은 상처는 가슴에 남아 상처가 되죠.(중략) 자기 스스로 망가진다는 말은, 만약 그의 부모가 그의 인생과 돈을 훔치지 않고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지만 않았다면…….'
 어린 천재였던 도니스미스는 이제 천재소년은 커녕 평균이하의 얼빠진 사회인이다. 그는 바에서 퀴즈쇼를 들으며 자신의 삶을 후회하고, 자신이 왜 그렇게 살아왔는지를, 왜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지에 대해 괴로워한다. 그러나 도니는 왜 자신이 이런 삶을 살고 있는 지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과거는 불변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얼 패트리지는 막대한 부를 가지고 있지만 자신이 저지를 과거를 후회하며 아들과 여자를 보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우리는 과거를 잊었지만 과거는 우리를 잊지 않았다.'라고. 그의 아내인 린다도 같다. 린다는 돈을 노리고 늙은 얼과 결혼했지만, 뒤늦게 죽어가는 얼을 사랑하게 됨으로써 괴로워한다. 그녀는 얼이 했던 대사를 하지는 않지만, 그녀 또한 자신이 저지른 과거에 의해 지금 괴로워하게 되었다. 또 방송인 지미 게이터도 마찬가지다. 지미는 자신이 바람피운 것과, 딸, 클라우디아를 성희롱한 것에 대해 뒤늦게 후회하고 괴로워한다.  각기 다른 사건들이지만 간단하다. 구조는 같다. 그리고 한 문장으로 요약까지 된다.'우리는 과거를 잊었지만 과거는 우리를 잊지 않았다.' 이 대사로 말이다.
 감독은 '원인과 결과''과거와 현재'의 인과를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숨겨왔던 인물들의 이야기가 밝혀지면서 파편화되어 있던 각 플롯은 이어진다. 각 인물들이 퀴즈쇼를 보게 되는 장면과 노래를 한 소절 씩 부르며 흘러가는 장면은 각 인물들이 가진 괴로움을 긴밀하게 연결시킨다. 장면 안에서 누군가는 후회하고, 누군가는 용서를 구하며, 누군가는 자신의 과거에 맞선다.
 
구리 비의 장면은 영화 내내 강조되었던 '과거와 원인'을 극적으로 강조시킨다. 개구리 비가 어째서 내렸는 지 영화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 의미 또한 밝혀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역으로 주제를 강조시킨다. 개구리 비 또한 어떤 일에 대한 결과다. 등장인물들이 과거가 원인이 되어 결과에 현재의 상처를 가지게 된 것처럼.

  감독은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다'는 인과율인 싱크로니시티를 이야기하며 불우한 많은 일들을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 불가해한 삶의 현상들을 우연이란 이름으로 넘겨버려도 되는가? 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느끼게 해준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종종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닥치곤 한다. 그리고 그것을 우연한 일이라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고 생각하곤 잊어버리려고 한다. 원인이 자신이 저지른 과거에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서. 감독은 등장인물의 모든 상처가 과거에 있었다는 점을 통해 모든 일을 우연이라는 것으로 끝내버리면 안된다고 말하며, 자신의 과거를 뒤돌아보고 원인을 찾으라는 메시지를 관객에게 보여준다.
 인을 해결하면 결과는 달라진다는 논리는 간단하고 논리적인 답이다.  하지만 사람은 종종 잊어버리곤 한다. 현명한 인간이라는 것은 그 원인을 모른 척하지 않고 자신의 과거에서 되짚어보며 찾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닐까.

[액션][애니메이션] GREEN VS RED 자유롭고 숭고한 영혼. 루팡 3세 애니메이션. 본다. 쓴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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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는 내용누설과 주관적인 해석이 있습니다.
 작품의 줄거리나, 결말, 반전 요소 및 작품 내용이 있으므로, 내용 누설을 원하지 않는다면
 뒤로 가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또한 주관적인 생각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어디까지나 참고로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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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나 한번 쯤 영웅을 꿈꿔본 적이 있었으리라. 가면을 쓰고 멋지게 나타나 지구를 정복하려는 나쁜 악당을 물리치는 히어로. 어릴 때 나왔던 tv속 영웅들은 어린아이들에게 정의의 상징이자, 동경의 대상이었다. 지금도 가끔씩 놀이터에 가보면 어린아이들은 문구점에서 산 영웅장난감을 허리에 또는 손에 쥐고 신나게 뛰놀곤 한다.
 어린아이들에게 있어, 가면을 쓴 영웅은 정의의 상징이다. 언제나 멋지고, 위기에서 사람들을 도와주는 존재다. 아이들은 영웅을 동경하고 그런 영웅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비슷한 장난감으로 자신을 치장해 자신이 영웅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며 즐겁게 논다. 물론 속으로는 자신이 영웅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말이다. 동경하던 대상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점차 꿈이 되고, 목표가 된다.
 사람들은 장동건이라는 배우의 이름을 들으면 유명한 남자배우를 떠올리며, 인상이 강하고 야성미 넘치는 그의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장동건이라는 이름을 가진 배우가 자신의 삶 속에서 쌓아올린 이미지다. 장동건이 만약 배우를 하지 않고 다른 행동을 했다면 그는 배우가 되지 않을 테고 그는 유명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름은 태어날 때 부여받지만 그 이름의 가치는 사람의 인생에서 만들어져 가는 것이리라. 하지만 간과하면 안되는 것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장동건의 이미지는 그가 만들어낸 것이기도 하지만, 세상이 만들어 낸 것이기도 하다. 장동건을 알고 있는 세상 사람들이 그를 야성미 넘치고 인상이 강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는 그런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루팡 3세 40주년 기념작 OVA는 이러한 '동경'과 '이름'을 테마로 잡은 작품이다.

팡 3세라는 작품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루팡이 등장하는 작품들이 모험과 활극, 코믹적인 느낌을 받곤 한다. 하지만 루팡 3세에는 이런 밝은 것만이 있지 않다. 때론 하드보일드한 액션과 느와르가 풍겨지는 것은 물론이요, 강간과 잔인한 살인사건을 다룬 에피소드도 다분히 있다. 그래서 루팡 3세는 보면 볼 수록 흥미로운 작품이다. 종잡을 수 없는 이미지 때문에 그렇다. 이는 1979년부터 길게 이어져 수 많은 감독과 스태프들을 거치며 감독의 각자의 스타일과 루팡에 대한 해석이 달랐다는 점이 컸다. 50년을 이어오면서 루팡은 하나의 일관성을 가진 인물이 아니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루팡의 디자인도 제각각이다. 기본적인 골자는 있지만 재킷의 색도 일정치 않고 뜯어보면 상당히 다르기도 하니까.
 'GREEN VS RED'은 이러한 루팡의 케릭터에 파격적인 설정을 가지고 온다. 여태까지 자켓과 디자인이 달랐던 것과 작품의 분위기가 제각각이었던 것을 사실 '루팡 3세'는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사람'이었다고 하며 시작한다.


 루팡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생각나는 이미지는 무엇이 있을 까. 작품을 알고 있다면 원숭이를 닮은 얼굴에 유쾌한 성격을 가진 남자와, 초록색, 빨간색 자켓을 입고 왈서 38을 다루는 그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다. 언제나 쿨하고, 멋지고, 자유롭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은 '루팡'을 동경하고 그가 되고 싶어한다.'GREEN VS RED'에 나왔던 수 많은 루팡들은 그런 남자들의 모습이다. 유명한 루팡의 이미지는 세계각국으로 퍼져 있고, 모두들 그를 따라해 머리에 왁스를 바르고, 자켓을 입고, 비슷한 차를 몰며 세계를 활보한다
 하지만 제니가타는 똑같이 모습을 꾸민다고 한들, 루팡이 아니라 가짜라고 말한다.

제니가타: 홍콩, 마카오, 싱가폴, 루팡이 출몰했다는 소문을 듣고 뛰어다녔지만......전부 루팡 이름을 대는 가짜들뿐.
              다른 녀석들은 어찌됐든 이 제니가타 눈을 속일 수는 없지.



 제니가타에게는 뭔가 구별할 수 있는 것이라도 있는 걸까. 가짜가 판 치는 판에서 말이다. 한편, 지겐과 고에몬은 오랜만에 만난 루팡에게 말한다.

고에몬: 거기 있는 건 틀림없는 루팡일세
지겐: 진짜냐, 가짜냐가 문제가 아냐. 같이 다니면 다른 어떤 녀석들보다도 재밌다고 그런 녀석이잖아? 루팡은.
루팡: 그렇군
지겐: 거기다, 저 녀석은 너보다 너다울지 몰라.
고에몬: 본인도 동감이오


 너보다 너다울지 몰라. 무슨 말일까. 지겐의 대사는 모호한 느낌을 안겨준다. 그러나 이것은 작품이 흘러가며 확실해진다

유키코: 진짜 얼굴이요
노인:진짜 얼굴?
유키코: 예를 들면 국적같은....
노인: 국적이라.. 그런 거 들어서 뭐하려고? 아가씨
유키코: 둘러대지 말아주세요. 그 사람은 도대체
노인: 루팡에겐 국적도 국경도 관계없다네. 그는 자유, 그 자체야
유키코: 무슨 뜻인가요? 그 사람도 인간 아닌가요?
노인: 고민이나 괴로움도 그런 건 루팡한테 어울리지 않아. 언제나 잘 나가고 쿨한 남자지.
       적어도 루팡이 된 후엔 말이지.


 마지막 결투 전, 루팡은 지겐에게 말한다. 진짜인지, 거짓인지 그런 것은 흥미없다, 확인하고 싶은 것은 진짠지 아닌지일뿐이다라고. 노인이 말했던 루팡에 대한 것은 여기서 더 강조된다. GREEN VS RED에서 루팡이란, 누군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닌 하나의 '자리'다. 때문에 진짜냐 가짜냐는 중요하지 않다. 루팡은 '언제나 잘 나가고 쿨한 자유로운 남자'를 말하는 자리니까 두 사람이어도 상관없다. 루팡은 두명이나 필요없다고 말하는 것은 두 명의 루팡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닌, 루팡이라는 자리가 두 자리 씩이나 필요없다는 의미다.

루팡: 루팡 얼굴을 했다고 루팡인 게 아니라고

  루팡은 야스오가 루팡의 자리에 어울리는 지 어울리지 않는 지에 관심이 있었다. GREEN VS RED에서 루팡은 루팡이 아니라, 루팡들이다. 루팡이란 어떤 조건만 갖춰지면 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초반에 등장하는 수 많은 루팡들은 언제나 잘 나가고 쿨한 남자가 아니다. 이는 그들이 좀도둑으로 잡힌 루팡을 힐난하기 위해 도쿄로 온 행동에 있다. 신경쓰지 않아도 되었다. 루팡이라는 진정한 의미를 알고 있으면 말이다. 정말로 자유롭고 쿨하다면 화를 내면서 도쿄로 달려왔을까? 아니다.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편의점 도둑의 남자는 루팡의 옷을 입고 있지만 루팡이 아니니까. 진정한 루팡에 어울리는 자라면, 하고 있던 바캉스나, 휴가를 보낼 것이었다. 루팡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진정한 루팡을 알지 못하고 있다.


  이런면에서 유키코라는 인물은 흥미롭다. 유키코는 야스오가 루팡이 될 수 없는 요소 중 하나다. 능력이나 각오와 같은 것도 있겠지만, 야스오는 유키코에게 있어 '야스오'지, '루팡'이 아니다. 애초 야스오가 루팡이 되는 계기에는 유키코의 웃음과도 관련이 있었다. 반지를 줄 때 보인 유키코의 웃음은 야스오가 루팡에 가까워지게 되기도 했고. 그러나 루팡 3세가 되려면 야스오는 유키코를 떠나야 한다. 루팡 3세에게 필요한 '자유롭고 숭고한 영혼에는  '과거', '국적', '시간', '이름'등의 것들은 거치적 거리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야스오에게 루팡이 될 수 있는 힘을 실어줬지만 유키코는 족쇄가 되어 있다.


  갈등하는 야스오의 모습은 경찰차에서 나누는 대화에서 느껴진다. 야스오는 제니가타의 모습을 하고 말한다. '루팡을 사랑할 수 있겠냐'고. 유키코는 이에 말한다. '아뇨, 아뇨, 범죄자는 제대로 법의 심판을'라고. 이 말을 들은 야스오는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마지막에 유키코가 야스오를 찾아갈 때,  그가 없는 장면은 안타까운 장면이다. 그녀는 사건의 전말을 미심쩍게 알고 있을 뿐 아무것도 모르고 있으니까


 생각해보면 GREEN VS RED는 간단한 이야기다. 작품을 한 문장으로 말한다면,'루팡이라는 자리를 가진 한 남자가 다른 남자에게 루팡의 자리를 인정하는 이야기' 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GREEN VS RED는 호불호가 갈리는 면이 있다. 왜 그럴까. 이는 작품 속에 있는 생략된 부분과 여러 곁가지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우선 어째서 루팡이 야스오에게 자리를 넘겨주려고 했는 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는다. 라면집에 자주 들리면서 야스오를 눈독들이고 있었다는 것은 나오지만, 어째서 그에게 권총을 주고, 자켓을 넘겨주었는가? 야스오를 왜 루팡으로 인정했는 지도 확실치 않다. 예고장을 보낸 패기가 마음에 들었던 걸까. 이런 점은 작품에서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곁가지는 더 있다. 약간 연관성을 주기 위해 등장시킨 '로건'이다. 로건은 자신의 아들의 육체에 자신의 뇌를 넣었다. 죽지 않는 대신 누군가를 죽여 생을 연장시켰다. 이런 로건의 요소는 작품에서 나오는 이름과 육체에 대한 관련이 있지만....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이런 복잡한 설정이 꼭 필요했는가. 아이스 큐브와 원폭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다. 어째서 이런 소재를 등장시켰는 가.

 아이스 큐브의 힘을 빌림시롱 느그들 미래꺼지 지켜주겠다는 거 아니여 딴 말루다 허면 밝은 미래에 대한 보험이라 말임시!
 
 시꺼! 이 아저씨야. 어려운 건 잘 모르겠지만, 그래.. 쓸데 없는 참견이라고!! 잘 들어나. 약하든
쓰레기든 우리들의 미래는 우리들 거라고!!


 감독이 어째서 이런 요소를 넣었는 지는 짐작이 가긴한다 '군대는 국가를 지키는 거지''국민을 지키는 게 아니네' 이런 대사가 대놓고 나오고, 카타형사가 말한 한번에 끝내버릴 수 있는 힘이라던가, 나가사키 언급, 일본이 다시 한번 전쟁을 꿈꾸고 있다는 내용등으로 감독은 일본에서 나타나는 정치에 있는 제국주의의 모습을 비판하고 싶었던 것이지도 모른다. 좋다. 제국주의의 일본의 모습은 비판받을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니까. 하지만 문제는 이런 것들이 '루팡의 자리'를 놓고 벌이는 이야기에 필요했을까. 꼭 이렇게 해야 했는 지 의문이다. 명확하게 설명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야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뭐 그래도, 마지막 결투 씬에서 보여준 날카로운 액션씬은 멋졌다.  작품의 명장면을 꼽으라면 이 장면 아닐까 싶다.




[문학][한국문학] 김영하 단편 흡혈귀, 피뢰침. 환상소설의 리얼리티 책, 읽는다. 리뷰,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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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는 내용누설과 주관적인 해석이 있습니다.
 작품의 줄거리나, 결말, 반전 요소 및 작품 내용이 있으므로, 내용 누설을 원하지 않는다면
 뒤로 가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또한 주관적인 생각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어디까지나 참고로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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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
민지 시절의 환상소설의 모습은 좌절스러운 현실에서 도피하거나 저항하기 위해 써지곤 했다. 이때의 환상소설들은 환상이 현실에 얽매여 있기에 작가가 써낸 '환상'이 '현실'과 분리되어 있는 모습을 보인다. 확연히 다르게 보이는 환상은 현실과 뚜렷하게 비교되어, 현실의 비참함과 척박함을 강하게 느끼게 한다. 현실을 표현하기 위해 환상을 끌어들인 이 구성은 리얼리즘의 모습이 드러난다. 환상과 현실을 비교시켜 역으로 비참함을 강조했던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환상소설의 모습은 다르다. 현대의 환상소설은 환상과 현실이 동등한 위치에 있는 형태를 취해, 두 대상을 잘 구별할 수 없는 구조를 하고 있다. 작가는 만들어낸 허구인 환상 속에 현실 속에 있는 요소들과 자세한 묘사와 여러 가지 방법들을 통해 환상을 현실처럼 보이게 한다. 이러한 구성방식을 '환상적 리얼리즘'이라 말한다.


김영하의 단편 '흡혈귀'는 이렇게 시작된다.

 지난 해 펴낸 장편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때문에 가끔 이상한 전화나 편지를 받을 때가 있다. 그 소설에서는 자살 안내라는 좀 특이한 일을 하는 사람이 화자로 등장하는데, 독자들 중에는 작가인 나와 그 자살 안내인을 같은 사람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중략)
"김영하씨 댁인가요?"
"전데요. 누구시죠?

 
작가가 쓴 소설은 픽션이며 허구다. 그것이 아무리 현실을 바탕으로 한다고 해도 소설에서 현실을 완벽하게 그릴 수는 없다. 작가의 생각과 주관이 들어가기 때문에 객관적인 현실을 있는 그대로로 나타내기는 어렵다. 김영하는 이를 역으로 이용한다.
 작가는 본문 안에서 자신이 작성한 소설과 똑같은 소설을 지은 서술자를 등장시킨다. 첫 도입부로 인해 독자는 소설 속의 '김영하'와 이 소설을 쓴 '김영하'를 혼동하게 된다.
 서술자는 작가가 쓴 실제 장편소설을 언급한다.  '김영하'라는 이름을 직접 밝히는 대화는 결정적으로 쐐기를 박아버리는 대사라고 볼 수 있겠다. 이 대화를 통해 독자에게 소설 속의 김영하는 현실의 김영하와 동등한 힘을 가진 것처럼 느끼게 된다.

 원고나 청탁이나 기획서가 아닐까? 출판사 봉투가 아닌 걸로 봐선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나중에 천천히 보자. 처음에는 그저 그렇게만 생각하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후략)
 그러다가, 지난 10월 16일, 친구의 생일이어서 간단하게 술을 한잔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이러한 일상적인 부분은 소설 속의 김영하의 힘을 강화시켜주고 있다. 작가가 겪을 법한 일을 제시하고 있는 이 부분은 소설 속 김영하의 '리얼리티'를 강화해 이 인물이 말할 앞으로의 사건을 현실 속에 벌어진 사건과 같이 느끼게 한다.
 단편 흡혈귀의 구도는 흥미로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작가 김영하가 의도적으로 만든 서술자를 통해 독자들에게 착각을 부여한 점과 김희연이 자신의 남편이 쓴 흡혈귀라는 시나리오를 통해 남편이 진짜 흡혈귀라고 착각한 점은 구조적으로 상통한다. 독자가 착각을 한 것 처럼 김희연도 착각을 하기 때문이다.
 
소설 속 서술자는 현실의 김영하와 독자에게 동등한 힘을 얻었다. ‘소개하기로 하자'라고 직접적으로 서술자는 독자에게 말을 걸어온다. 독자는 갖가지 요소들로 인해 현실의 김영하와 소설의 서술자를 구분하지 못하고, 현실의 김영하가 소설 속에 있다고 착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상태에서 언급되는 김희연의 편지가 리얼리티를 가질 수 있는 점은 당연한 결과다. 작가 김영하가 겪었던 일이라고 독자는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희연은 소설 속의 인물이지만, 서술자에 의해 현실에 있는 인물인 것처럼 ‘현실성’을 가지게 된다. '베르사유의 장미'와 곳곳에 등장하는 실제 김영하의 작품, 실제 작가의 작품들이 언급되는 점은 이 점을 더욱 강화시켜 준다.
 또한 서술자가 김희연의 남편을 알고 있으며, 자신의 지인이라고 말하는 점으로, 리얼리티는 김희연의 남편까지 이어지고 있다
 작가는 '리얼한'정보를 통해 환상을 강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첫 문장부터 맞춤법에 맞지 않는 단어들이 눈에 띄었다. 그 점이 글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기는 했지만, 문장은 의외로 간결하고 산뜻했다. 다 읽고 난 후의 내 감상은 나중에 밝히기로 하고, 이 흥미로운 편지를 먼저 소개하기로 하자. 몇 군데 의미가 연결되지 않는 문장은 내가 손을 보았고, 맞춤법이 틀린 곳도 고쳤다.(후략)

 저는 스물일곱 살의 여자입니다. 72년생이죠. (중략) 제 이야기를 잠깐 할까요. 여느 소녀들처럼 어린 시절엔 재미있는 소설과 만화를 보며 자랐습니다. '베르사유의 장미'같은 순정만화나 하이틴 로맨스…….(후략)

 참고로 말하면 나는 그녀의 남편을 알고 있다. 그는 내 동료 문인이며, 그녀 말대로 내 소설에 대한 평론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가 흡혈귀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제 좀 유심히 보아야겠다.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후략)

…….읽을 수 없이 낡아빠진 고서 묶음들. 일제 강점기의 사진들. 그중에서 몇 장의 사진은 단체사진이었는데, 꼭 한 명의 사진만은 예리하게 칼로 잘려나가고 없었습니다. (중략) 저는 그게 제 남편이라고 확신했습니다.(중략) 저는 뒷면을 보았습니다. '광무 3년 칠월 열하루'라고 적혀 있고, 그 아래에는 박춘식, 이분이라고 초서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남편의 그때 이름은 박춘식이었던 거지요.(중략) 그 때 저는 문득 시몬 드 보부아르의 '인간은 모두 죽는다.'라는 소설을 기억해냈습니다. 그 소설은 선생님의 단편 '도드리'에서 잠깐 언급되기도 했지요.

  김희연은 자신의 남편을 의심해 그의 서가를 뒤져 의심스러운 정보들을 찾아낸다. 김희연이 말하는 역사적 정보와 실제 존재하는 작가와 소설들은 독자들에게 또 ‘리얼리티’를 안겨준다. 소설 속의 서술자인 김영하가 얻은 리얼리티는 김희연에게 이어졌다. 김희연 또한 김영하와 같이 독자들에게 객관적으로 보이는 정보를 제시해 리얼리티를 안겨주고 있다. 이렇게 계속 이어지는 리얼리티는 독자에게 소설 속에 일어나는 환상속의 허구들이 진짜로 있었던 일인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힘을 가진다.

 한편, 또 다른 단편인 '피뢰침'에는 한 여자가 낙뢰를 맞는 모임인 '아디드'에서 겪었던 일을 말하고 있다. 이 소설의 서술자는 '흡혈귀의 서술자 같지는 않으나, '흡혈귀'에서 가지는 구성방식을 따라간다.

 처음 그 모임에 관해 들었을 때의 기분을 뭐라고 해야 할까. 쌍둥이였다는 사실을 다 크고 나서야 안 기분이랄까. 반가우면서도 어딘가 불편한, 삶의 기저가 아주 천천히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누구나 살아가다 보면 한 번쯤 잊지 못할 경험을 한다. 문제는 그 경험이 아주 짧고 강렬했을 때 발생한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디테일은 부정확해지고, 나중엔 그런 일이 정말로 있었나 싶은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중략)

 그러나 내 경우는 조금 달랐다. 그 짧고 강렬한 순간이 지나가고 난 후 까닭 없이 죄의식을 느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여자 아이들이 그렇듯, 나도 어떤 사고가 발생하기만 하면 그게 내 잘못이라는 생각부터 들었다.(중략)....그 일이 정말로 일어났던 것인지 의문스러워졌다. 게다가 고등학교 시절은 정신없이 지나가버렸다.(중략) 그러면서 나는 어느새 그런 놀라운 경험을 했었다는 사실을 차츰 잊어갔던 것 같다.
 어쩌면 잊은 게 아니라 묻어뒀던지도 모른다. 무의식 저 깊은 곳에 말이다.(후략)


 '피뢰침'은 서술자가 자신이 앞으로 말할 과거의 일을 독자가 공감을 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유도한다. 자신이 겪었던 환상적인 그 사건을 이야기하기 전에 상당한 뜸을 들이는 모습은 정말로 놀라웠던 '일'이라는 점을 독자에게 느끼게 한다.

"저 뇌운에서 먼저 선도뇌격을 때려서 그게 대지에 닿으면 다시 복귀뇌격을 되쏘는 겁니다. 그 시간이 너무 짧아서 우리 눈엔 한 번 치는 걸로 보이지만요."
...어떤 이는 번개에 관련한 역사적 사실을 수집하고 있었다. 1725년 5월 벤자민 프랭클린의 기념비적인 연 실험 정도는 기본이었고, 서양의 중세, 심지어 '조선 왕조 실록'에 나타난 관련 자료도 모으고 있었다.

 중간 중간에 나오는 낙뢰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들은 서술자가 겪었던 일의 리얼리티를 강화시켜 준다. 자신이 겪었던 일에 객관적 정보를 끌어오는 면은 '흡혈귀'에 나왔던 구성방식과 같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전화기를 통해 아주 미세한 전류가 내 정맥을 타고 흘렀다. 그에 따라 내 몸도 부들부들 떨려왔고, 귓속에선 윙윙거림이 그치지 않았다. 몸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몸은 오랜 주술에서 풀려나는 미라처럼 천천히 먼지들을 떨어내면서 내가 잊고 있었다고 믿어왔던 그 때 그 순간의 현상들을 재현해내고 있었다.(후략)

 자갈밭에 엎드린 채로 나는 오줌을 지렸던 것 같다. 부끄러웠다. 때마침 죽어서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그 순간 하늘이 환해지면서 다시 벽력 소리가 귀청을...(중략)

 ....그의 몸이 요동하며 천천히 무너지는 것을, 그리고 그 순간 내 몸 구석구석 깊은 곳의 온갖 체액들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나는 허물어졌고, 허물어진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오줌을 누었다. 질척한 공기엔 강렬한 락스 냄새가 팽만했다.(중략)

 서술자는 과거를 이야기할 때 장황하고 자세한 이미지적인 묘사를 사용한다. 이미지적인 묘사는 독자에게 서술자가 겪었던 일이 겪었던 것처럼 느끼게 한다. 독자는 서술자가 제시하는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그리게 된다. 독자는 서술자의 느낌을 보면서 설득받고 있다. 과거의 사건을 지나칠 때마다 서술자 자신의 그 때의 느낌과 생각을 상당히 공들여 자세히 묘사한다. 때문에 ‘피뢰침’의 전개는 느리다. 긴 묘사와 독백을 통해 서술자는 독자에게 그 때 느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전달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피뢰침의 서술자에게는 흡혈귀의 서술자와 같이 특수한 정보를 가지지고 있지는 않으나, 자신이 겪었던 과거의 일에 대해 길고 감각적인 묘사를 통해 리얼리티를 가진다. 이렇게 볼때, 피뢰침은 ‘흡혈귀’와는 형태가 다른 환상적 리얼리즘을 가지고 있다.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이 상당히 사실적인 묘사와 가상의 역사를 통해 진짜 같은 환상을 만든 것처럼, '피뢰침'은 한 순간의 강렬한 느낌에 공을 들여 묘사함으로써 리얼리티를 얻었다. 



 흡혈귀, 피뢰침 이 두 단편은 작가 자신이 쓴 소설의 내용이나, 역사기록, 과학적인 이론을 연결시키는'상호텍스트성' 을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얻은 리얼리티를 ‘흡혈귀’는 특수한 서술자를 통해 강한 리얼리티를 강화하고, ‘피뢰침’은 서술자가 겪었던 길고 긴 묘사를 통해 리얼리티를 강화한다.공통점은 객관적인 정보를 기본으로 해서 자신이 겪었던 일에 리얼리티를 얻어냈다는 점이다. 리얼한 소재를 통해, 허구적인 소설의 세계를 넓혀가는 구성을 취하는 방식에 있다.
 또한 미완적인 느낌을 주는 결말이 아닌 서사를 유지하는 일상에서 시작해서 환상을 회고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회귀의 방식을 택한다. 주인공들은 변함없는 일상에 있고, 자신에게 있었던 환상을 독자에게 고백하고 회상한다. 이야기의 끝은 끝에서 다시 시작으로 돌아간다. 그들은 환상적인 일을 겪었지만 그것이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지는 않았다. 작품은 인물이 어떻게 되었는지, 환상의 진위여부에 대해 다루지 않는다. 그저 그런 사건이 있었다고 회상할 뿐이다. 독자는 환상을 말하는 서술자를 의심하면서도 '김희연이 어떻게 되었나?' '아디드의 J와 서술자는 어떻게 되었나?'를 궁금하게 된다. 환상은 의심받지만 리얼리티를 잃지 않고 독자의 안에서 이어진다.

 
단편 흡혈귀의 환상을 인식하는 방법은 쉽다. 소설의 개념을 생각해보자. 소설 안에 있는 이야기는 결국 작가에 의해 쓰인 이야기에 불과하다. 소설 속의 서술자와 작가 김영하는 비슷하게 보이지만 명백히 다른 인물이다.

 그 소설에서는 자살 안내라는 좀 특이한 일을 하는 사람이 화자로 등장하는데, 독자들 중에는 작가인 나와 그 자살 안내인을 같은 사람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이 문장은 흡혈귀의 환상을 깰 수 있는 단서다. 독자가 환상을 느끼는 이유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인물 설정 때문이다. 이 인물설정을 뒷받침하기 위해 객관적인 정보를 불러왔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위 문장은 아이러니하다. 독자는 이 문장을 통해 소설 속의 서술자를 현실의 김영하가 회고를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허구와 의도적으로 작가에 의해 짜인 것을 생각하고 본다면 이 문장은 그저 허구인물의 회고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김희연의 경우도 이와 같다. 김희연은 남편의 특이한 행동을 일반인에 범주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해 그가 인간이 아닌 흡혈귀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남편이 지은 시나리오 '흡혈귀'의 설정을 자전적 이야기로 착각한다.


 한 남자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어느 날 삶이 무한정 계속될 거라는 망상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죽지 않는 사람이라고 믿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임진왜란 당시 고니시 유키나가 휘하의 일본군을 따라온 네덜란드 군목에 의해 흡혈귀가 되었다고 믿게 됩니다.

 
'고니시 유키나카'와 '임진왜란' '네덜란드'와 같은 언급은 이야기를 역사적으로 있었던 일처럼 보여주기 위한 정보다. 몇몇 독자들은 이것을 작가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설정이라고 인식할 수 있으나, 김희연의 경우에는 다르다. 그는 자신의 남편의 행동 하나하나가 어딘가 비틀려 있다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착각을 일으켰다. 남편이 느끼는 끝없는 허무감,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 그런 요소는 김희연이 남편이 흡혈귀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불러왔다. 이 추측은 앞서 제시한 '고서 묶음''일제 강점기의 사진'들이 확신을 안겨주게 한다.
 김희연의 모습은 뒤로 갈수록 심각해진다.





 남편은 흡혈귀였던 겁니다. 오, 맙소사.(중략) 지금까지의 일을 찬찬히 돌이켜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 일투성이였습니다. 섹스부터가 그랬습니다. (중략) 또 남편은 모르는 것이 없었어요. 조선시대 고전문학부터 영미문학 신소설부터 최근의 현대소설까지 읽지 않은 작품이 없었습니다.(중략) 어떻게 서른다섯의 남자가 그 많은 것을 다 읽을 수가 있었을까요? (중략)김치를 좋아하지 않는 한국 사람을 보신 일이 있습니까?(중략)그가 보는 영화는 또 어떤 줄 아세요?(중략) 더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기도 했습니다. (중략) 뭐냐 하면 남편이 자고 일어난 베개 근처엔 단 한 올의 머리카락도 없었다는 거죠.

  이러한 이해는 큰 착각에 불과하다. 그녀가 이야기하는 것들은 자신이 알고 있던 일반인에 대한 기준에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남편의 행동이다. 김희연은 환상 속에 빠진 상태에서 자신이 느끼는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뒷받침되는 정보들을 말한다. 하지만 이 정보들의 본질은 '그럴 수도 있지'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는 그런 정보에 불과하다. 환상 속에 이미 깊게 들어간 김희연의 눈에는 모든 것이 환상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당신이 흡혈귀라는 걸 알아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도요."
"당신의 시나리오는 자기 이야기지요?"
"많은 독자들이 작가와 화자를 혼동한다."
"당신 서재에 있는 저 관은 뭔가요? 저거야말로 당신이 흡혈귀라는 피할 수 없는 증거에요."

  김희연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범주의 것으로 내몰고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고 자신이 생각한 것만이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가치와 삶의 기준이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고 강요한다.

.... 남편이 흡혈귀인 이상, 불멸하는 이상, 더 이상 그와 살 수 없습니다. 저는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아이를 낳고 남편과 함께 팝콘을 먹으며 할리우드 영화를 보고 주말이면 놀이동산 가는 삶 그런 삶을 살고 싶어요. 하지만 세상 모든 것에 흥미를 잃어버린 흡혈귀 남편이 흡혈귀인 이상 불멸하는 이상, 더 이상 그와 살 수는 없습니다. (후략)

"세상의 모든 흡혈귀들은 거세당했다. 세상은 빛으로 가득하다. 어디에도 숨을 곳은 없다. 우리는 흡혈의 자유와 반역의 재능을 헌납 당했고, 대신 생존의 굴욕만을 넘겨받았다.......

 왜냐하면, 내 생각엔 아무래도 바로 그녀가 흡혈귀인 것만 같기 때문이다. 이전 그저 내 짐작일 뿐이다. 짐작.(*)

 김영하는 남편의 직업이 '작가'라는 점을 통해 작가들이 펼치는 표현력들이 쉽게 평가하는 현시대를 비판한다. 이것은 작가에 국한된 것만이 아니다. 작가라는 직업은 하나의 예일 뿐이다. '김희연'이 역으로 '흡혈귀'라고 서술자가 말하는 부분은 누군가를 강제로 감염시켜 자신과 똑같은 사고를 하도록 강요하는 점을 내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우습게도 시계를 본 것이었다. (중략) 그러나 시계는 보이지 않았다. (중략) 그때 다시 텐트가 흔들릴 정도로 강한 벼락이 쳤다. 그재서야 아빠가 부스럭거리며 일어났고, 나는 엄마와 아빠 사이로 기어들어가 몸을 웅크렸다.  그때부터 그 게스시계는 작동을 멈췄다. 10시 32분 24초. 그 후로 나는 가끔 그 시계를 꺼내본다. 그때마다 오줌이 마려웠다.

……. 세 번의 연구 모임을 마쳤고, 이미 '전격 세례' 경험이 있으므로, 나는 그날 모임 이후 바로 정회원으로 승격되었다. 게스 시계는 증거로 제출되었다. 정회원들은 그 시계를 유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경의를 표하며 살펴보았다. 

 피뢰침의 감각적이고 사실 같은 묘사는 리얼리티를 안겨주기도 하지만 믿을 수 없는 부분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분명 시계는 사라졌다고 서술자는 말했다. 그런데 시계는 다시 나와 작동을 멈췄다. 이 시계는 후에 낙뢰를 맞았다는 증거로서 아디드의 회원들에게 제시된다.

눈을 감고 그날의 기억을 되살려보려고 애써보았다. (중략) 아빠를 따라온 가족이 남한강, 북한강이었나? 여하튼 돌이 굵은 강변으로 가서 텐트를 쳤다.(중략) 아, 이 부분이 확실하지 않다. 다른 사람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조금 망설였던 것 같고, 오줌을 눈 것 같기도 하고, 누기 전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기묘한 기분에 휩싸였던 기억이 났다.

 서술자의 묘사는 불확실한 면이 있다. 서술자의 모습은 이중적이다. 감각적이고, 자신이 느꼈고 생각했던 것을 자세하게 표현하지만 정작 자신이 낙뢰를 맞았던 어릴 적의 기억은 불확실하다. 장소가 북한강인지, 남한강인지도 긴가민가하며, 자신이 오줌을 누었는지 안 누었는지도 잘 생각해내지 못한다.
 또한 이 단편에서는 객관적으로 보이는 허구적 정보를 소설 안에 심어놓기도 했다.
 
 "물론 역사적 사례도 있습니다.(중략) 일본 에도 막부 시대의 ‘무라야마 겐이치로’라는 사무라이는 산에서 한 번, 그리고 들에서 한 번, 들고 다니던 일본도 때문에 똑같은 일을 당했지만, 멀쩡히 살아서 에도 막부의 중책까지 맡아서 일하다 늙어서 죽었습니다. 저 역시 네 번의 경험이 있습니다."

 

 묘사를 보면 에도 막부 시대의 '무라야마 겐이치로'라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이 정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정보다.
 '일본 검'에 의해 번개를 맞은 사람의 기록은 일본사에 전해지는 기록이다. 하지만 이 사람의 이름은 '타치바나 도세츠(立花 道雪)다. 이 장수는 뇌신(雷神)'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장수로 젊은 시절 벼락을 맞아 하반신 불수가 되었다. 뇌신이라는 별명은 여기서 유래했다. 벼락을 맞고도 죽지 않은 이 사무라이 도세츠가 쓰던 칼은 뇌신을 베었다고 해서, '뇌절환(라이키리마루~雷切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앞서 진짜 있었던 프랭클린 벤자민의 실험은 진짜지만 이 정보는 왜곡되어 있다.
 

 



 허구적 이야기인 소설이니 정보를 왜곡해도 별 상관은 없다. 하지만 정보의 사실여부가 아니라, 진짜 있었던 역사적, 과학적 정보에 왜곡된 ‘정보’를 넣어 실제로 '무라야마 겐이치로'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독자를 믿게 하는 힘이다. 사실 속에 거짓말을 섞어 넣어 거짓말도 사실처럼 느끼도록 한 것이다.
 
자세하며 장황하고 감각적인 단어로 자신의 느낌을 묘사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낙뢰를 맞기 전의 기억을 떠올리지 못한 서술자와 사실에 교묘하게 끼어들어간 왜곡된 정보는 ‘불확실하다’는 점에서 서로 닮아 있다. 이런 불확실한 점은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 이미 제시되었었다.
 누구나 살아가다 보면 한 번쯤 잊지 못할 경험을 한다. 문제는 그 경험이 아주 짧고 강렬했을 때 발생한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디테일은 부정확해지고, 나중엔 그런 일이 정말로 있었나 싶은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후략)

  그녀는 이미 이야기의 시작 전에 자신이 말하는 것들이 왜곡되어 있을 수 있음을 밝혔다. 독자는 그녀의 이야기에서 리얼리티를 느낀다. 하지만 그것은 시간이 너무 지난 불확실한 정보들이다. 애매한 것을 떠올리며 그것을 이야기하려고 하니 자꾸 덧붙인다. 그러니 장황해지고, 불확실해질 수밖에 없다. 그녀의 사실적이고 감각적인 묘사들은 리얼리티를 불러오면서도 위화감이 들게 하는 양날의 검이다.

"우리는 다시 전격을 받으러 모인 겁니다. 그뿐입니다.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닙니다."

"아닙니다. 같습니다. (중략) 하지만, 전격도 전격 나름.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진짜가 찾아옵니다. 그때, 아주 잠깐, 다른 세상, 다른 나를 보는 겁니다. 나는 내 몸과 대기와 대지의 주인이 됩니다. 아주 잠깐.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한 사람의 퍼포머인 셈입니다. 언젠가 지극히 완벽한 공포와 전격을 일치시켜 자아를 뛰어넘은, 그 경지에 이를 때까지 나는 전란운을 쫒아 다닐 겁니다."

 J의 대사들은 피뢰침의 주제를 명확하게 담고 있다. 피뢰침에서 김영하는 과거에 겪었던 환상적인 경험, 자기 자신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린 강렬한 경험을 쫓는 사람들을 등장시킨다.. 비루하고 고루한 일상 속에서 그들이 겪었었던 과거의 환상은 변색되고, 진짜 있었던지 모르는 일로 변해간다. 아디드의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특별하다고 느낄 수 있었던 때는 낙뢰를 맞았을 때다. 그들은 그 때 느꼈던 강렬한 것을 다시 한 번 맛보려고 한다.
  어렸을 때 생각했던 순수함, 환상을 사람들은 잊어버리고 더 이상 쫓지 않게 된다. 안개의 저편으로 사라진 과거에 대한 것을 현대인은 자신의 일상 속에서 잊어버린다. 김영하는 환상을 쫓는 어떻게 보면 무모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환상을 갈구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그렸다. 서술자에게 불확실한 묘사를 하게 한 것은 현대인들이 그 환상을 뚜렷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모습을 그리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영하는 기존의 알려진 방법이 아닌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기법을 통해 대중들에게 문학의 가능성과 새로운 창작방법을 제시하곤 한다. 특히, 단편 흡혈귀에서 쓰인 작가의 파격적인 방법은 소설의 가능성을 느끼게 한다. 그럴듯해 보이는 거짓말을 하려면 사실을 섞어서 거짓말을 하라고 하던가. 현실에서 환상을 교묘하게 섞어 애매하게 만드는 작가의 구성방식이 흥미롭다.

[스릴러][미스터리] 정보의 불확실성. 메멘토 영화, 본다. 쓴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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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는 내용누설과 주관적인 해석이 있습니다.
 작품의 줄거리나, 결말, 반전 요소 및 작품 내용이 있으므로, 내용 누설을 원하지 않는다면
 뒤로 가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또한 주관적인 생각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어디까지나 참고로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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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메멘토는 '단기 기억 상실증'이라는 소재를 살려 복잡한 정보의 뒤섞임을 보여준 영화로, '2002년 미국 영화 연구소 영화상''시카고 비평가 협회에서 '각본상'을 받고, '2005년의 가장 위대한 독립 영화 50선에서 13위를 하는 등 많은 비평가들과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주인공인 레너드는 10분마다 기억이 사라진다. 그는 자신의 아내를 강간하고 죽인 '존G'라는 인물을 찾아 복수하려 한다. 레너드는 기억을 10분 이상 지속시키지 못해 항상 중요한 기억을 폴라로이드 사진과 메모를 통해 기억하려 한다. 또 이것과 별개로 가장 중요한 정보는 자신의 몸에 문신으로 남긴다.
 안경을 쓴 테디와 바에서 일을 하는 나탈리는 레너드에게 존G를 추적할 수 있도록 정보 제공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태도는 명확하지 않고 모순되어 있다. 두 사람은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인물들로, 레너드의 기억상실과 복수심을 교묘히 이용하고 있다.  감독은 왜곡되는 정보들과 주인공의 잘못된 인식을 통해'우리가 믿고 있는 것, 기억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불확실한 것인지'를 관객에게 말한다.


  영화의 플롯은 두 가지로 나뉜다. 영화는 두 가지 이야기를 교차시키며 전개하는데, 현재는 컬러,과거는 흑백으로 표현된다. 또한 현재인 컬러화면은 순차적이 아닌, 역순으로 진행되며 과거인 흑백은 순차적으로 진행이 된다.
 컬러와 흑백이 번갈아가며 흘러가는 영화의 전개는 주인공의 현재인 컬러가 역순으로 가고 있으므로 영화진행 후반이 과거인 흑백과 겹쳐지게 되는데
, 겹쳐지는 순간은 관객에게 영화의 반전요소를 직접적으로 제시한 부분으로 사용되었다.
 사실, 처음보면 상당히 난해하다. 역순행과 순행이 뒤섞여 동시에 흘러가고, 지그재그식으로 구성되어 한 순간이라도 눈을 때면 혼란스럽게 된다.
 영화를 단순한 순차적 순서로 배열하지 않았던 이유는 감독이 소재로 삼은 ''단기 기억 상실증'을 이용해 지나간 과거와 현재로 주인공의 행적을 나누어 결말을 미리 보여주고 '왜 주인공이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나'에 대한 서사의 당위성을 관객에게 추측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핵심적인 부분이나 결말을 미리 도입부에 제시하고 시작하는 영화는 많으나, 그 전개를 표현한 전개 방법은 당시 이 영화가 개봉된 2000년에는 유래가 없던 일로 관객들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영화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정보의 순서, 정보의 왜곡이라고 할 수 있겠다. 누구에 의해 얻는 정보인지, 또 이 정보가 누구에 의해 왜곡되는지, 또 언제 얻었는 지...... 이런 것을 하나하나 따져가면서 감상해보자.

 메멘토의 구조적 특징은 레너트가 가진 '기억상실증'에 의한 '정보의 인식'이다. 테디와 나탈리가 전하는 정보와 10분전의 자기 자신이 남긴 정보를 레너드는 매번 새로 인식하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려 애쓴다. 그 정보의 종류는 '메모''사진'사람들의 말' 그리고 '문신'으로 레너드는 이것들을 활용해 '존G'를 찾으려 한다.
 4가지의 단서 중 중요한 것은 '문신'으로, 레너드는 잊어버리면 절대 안되는 단서인 메모와 사진과 같은 정보를 자신의 몸에 남긴다. 그는 문신만이 절대적인 진실이며 다른 것은 불확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신이야 말로 그가 가장 신뢰하는 '정보'다. 이 정보들은 번호를 매겨 표시했는데, 이는 추후 설명을 위한 것이니 뒷부분을 읽을 때 참고 하길 바란다.

 영화에서 나온 문신들은 다음과 같다.


   사진에는 주인공의 주변인물관계와 거처,거주지 등의 정보와 그것에 관련된 것을 뒷장에 적어둔다. 이는 다음과 같다.

또, 사진과 문신과는 조금 다른 메모들이 존재한다.

단서들은 정보를 주는 두 인물들과 연결된다. 예를 들어 나탈리가 말하는 정보는 문신 정보 8번과 연결된다. '테디의 차 번호'를 왜 적었는지를 모르는 레너드는 그 번호가 범인의 번호라 생각한다. 협력자인 나탈리에게 번호가 누구의 것인지 알아봐달라고 하자, 나탈리는 그 번호가 ‘존 애드워드 겜멀’의 것이라 알려준다. 이 정보는 문신 1번과 2번에 연결된다,
 레너드는 그 정보를 얻고 호텔로 돌아와서 받은 정보를 통해 테디를 의심한다. 이것은 사진의 정보 2번과 연결된다. 레너드는 그 사진의 뒷면에 적혀 있는 ‘그의 거짓말을 믿지 마라’를 보고 자신의 문신 2번과 3번을 연결시키게 된다. 또한 나탈리에게 받은 운전면허증을 이용해 테디가 범인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레너드는 테디의 사진에 ‘그가 범인이다’ 라고 적는다.

 이 과정을 통해 여러 단서들이 인물과 복잡하게 연쇄적으로 얽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주인공이 가지고 있던 기초적인 정보와 나탈리의 정보에 의해 다른 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즉, 인물의 정보에 따라 존G의 정체와 레너드의 복수의 행방은 달라진다. 나탈리의 경우는 테디=존G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테디가 전해주는 정보에 의한 ‘존G’는 누구인가?

테디의 정보를 알기 위해서는 ‘세미’의 정보가 필요하다. 레너드가 알고 있는 세미에 대한 정보는 다음과 같다.

1) 세미는 기억상실에 걸린 사람이다.
2) 세미에게는 아내가 있었고 그 아내는 세미의 기억상실증이 믿기지 않아 당뇨병에 걸렸던 자신의 몸을 이용,
   세미에게 주사를 주기적으로 놓게 했고, 인슐린 과다로 죽었다.
3) 나는 아는 사람에게 세미의 이야기를 한다.


 나탈리의 정보가 컬러인 현재에서 시작되듯, 테디가 주는 정보는 흑백인 ‘과거’에서 시작된다. 레너드는 전화를 받고 ‘지미 그렌츠’에 대한 정보를 테디에게 듣는다. 이것은 문신 1번과 2번에 연결된다.‘지미 그렌츠’라는 남자가 범인이라는 것을 확신한 레너드는 전화상대인 테디를 만나기로 결심하고, 그를 만나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그의 안내에 따라 지미 그렌츠를 만나고, 그를 죽인다. 그러나, 지미가 죽기 전에 ‘세미…….’라고 중얼거리자 혼란스러워 한다.

 레너드는 자신이 아무 관련 없는 사람을 죽였다고 생각해 당황하고 건물을 나가자 테디를 발견한다. 테디는 자신을 경찰이라 소개하고 ‘지미 그렌츠’를 왜 죽였는지에 대해 레너드에게 묻는다. 허나 레너드는 테디를 의심하고 그를 기습해 그가 자신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아낸다. 이때 테디는 주인공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을 말해준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레너드의 아내는 사건 당시 죽지 않았다
2) 세미의 이야기는 레너드, 너의 이야기를 투영시킨 것이다. 세미의 부인은 없다.
   레너드의 조작이다. 당뇨병을 앓아 인슐린 과다로 죽은 사람은 세미의 아내가 아닌 레너드의 아내다.
3) 진짜 존G는 이미 1년 전에 죽었다 (그리고 사진 찍었다) 테디는 그것을 도와주었다
4) 이 세상에 존, 지미라고 불리는 사람은 상당히 많다. 내 이름도 '존 애드워드 겜멀'이니까


  테디의 말을 듣고 레너드는 부정한다. 이것에는 이유가 있다. 문신을 나침반으로 삼고 왔던 레너드에게 문신 11번이 가장 큰 축이었는데, 테디의 2번에 의해 부정이 되었다. 복수만을 생각했지만 테디의 3번에 의해 부정당했으며,  테디의 4번에 의해 문신 1번,2번, 4번도 부정당했다. 레너드가 테디의 정보를 믿지 않고 기억하지 않으려 했던 것은 자신이 알고 있던 대부분의 정보가 부정당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테디의 말을 진실로만 생각할 수 없는 것이, 테디의 정보는 조금 모순된다. 대표적으로 3번으로, 사진을 보여준다는 것은 주인공이 사진기를 가지고 다녔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레너드는 영화에서 테디를 처음 만났을 때 그의 사진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또한 1년 전 주인공과 테디가 진정 ‘존G’를 죽였다면 그 사진을 분명히 찍어서 레너드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어째서 테디만 가지고 있는가. 복수를 끝냈는데, 어째서 중요한 사진은 가지고 있지 않은가? 이것이 아리송하다. 테디가 이를 없앴을 가능성도 있다. 없애는 김에 자신이 찍힌 사진도 없애 애초에 있었던, 즉 자신과 레너드의 만남 자체를 없던 것으로 해버린 것일 수도 있다. 왜 그래야 하는 가? 테디는 어째서 조작을 해야 했는 가? 이것을 물고 늘어질 때, 테디의 정보는 신뢰 없어진다
 테디의 1번과 2번도 거짓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어디까지나 이것은 테디의 주장일 뿐 객관적으로 밝혀진 것이 아니다. 감독이 이 장면을 영화플롯 상 마지막 부분에 배치했고, 연출과 배우의 연기에 의해 ‘진실’처럼 보이게 한 것이지, 이것을 증명할 수 있는 근거는 명확하게 제시되 있지 않다.  만약 진실이라면, 세미에 대한 말을 테디가 하는 것이 아니라 제 3자가 해야 했다.
 테디의 진실 중 2번은 레너드가 알고 있는 세미의 정보인 2번과 연결이 되며 4번은 문신의 1번과 2번, 4번에 연결되어 있다. 레너드는 후에 테디를 믿지 않기로 한 레너드는 10분 뒤에 찾아올 미래의 자신을 위해 테디의 사진에 ‘그의 거짓말을 믿지 마라’라고 적는다. 또 그의 차 번호를 적는다. 이것은 나탈리의 정보를 나중에 얻을 때 테디 = 존G라고 한 단서에 연결이 된다.
 의미심장한 7번과 10번의 문신은 자신이 이용당했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새긴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10번 문신은 사람들에게 이 약점에 대해 말하고 다녔던 것을 반성하기 위한 문신일지도 모른다. 즉, 7번과 10번은 주인공의 과거행동을 대략적으로 알 수 있는 문신이라고 볼 수 있겠다.

  순서대로 재배열하고 정보를 다시 맞추어보자.
 8번을 제외한 모든 문신은 처음부터 존재했던 문신으로 이 문신에 의해 테디의 번호와 문신의 차 번호가 같다는 것을 알았다, --> ‘지미 그렌츠’가 범인이라는 것을 안 후, 테디의 사진(2번)을 얻고 복수를 완료하고 (6번)을 얻었다. --> 테디의 정보, 이에 레너드는 테디의 차 번호(8번)와 '그의 말을 믿지 마라'(2번의 보충)라고 적게 된다. --> 1번 메모를 발견한다. --> 나탈리를 만나고 그녀의 사진을 얻는다(3번) --> 레너드는 나탈리에게 도드에 관한 정보를 얻고 그녀의 집에서 나와 테디와 만난다. --> 테디의 충고에 의해 '그녀를 믿지 마라(3번의 그어진 메모)를 얻는다. --> 그가 가고 난 다음 사진 2번의 메모에 의해 사진 3번의 메모는 부정당한다. --> 도드를 만나고 그를 때려눕힌다. --> 테디에게 연락을 하고 그를 마을에서 추방시키고, 나탈리를 찾는다. --> 나탈리는 지미 그렌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은근슬쩍 넘어 간다. --> 레너드는 사진 3번에 (연인을 잃고 그에 대한 연민으로 날 도움)라고 적는다. --> 나탈리에 의해 8번의 번호에 의한 운전면허증의 정보를 얻은 레너드는 다시 한 번 문신을 통해 테디가 범인이라고 생각, 2번 테디의 사진에 (그가 범인이다 찾아서 죽여라)라 적는다. --> 테디를 살해한다
 복잡해보이지만 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레너드는 그저 휘둘리는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정보의 순서를 정리하면 감독이 역순으로 진행시킨 컬러와 순차적으로 진행된 흑백의 순서가 시간순서로 정리가 된다. 감독은 영화에서 주어지는 단서를 얻게 되는 이 순서를 통해 관객들에게 전체적인 줄거리와 진실이 어떤 것인지를 추측할 수 있도록 했으며, 주인공이 도입부에 취한 행동의 당위성을 증명했다.


화에서의 사건은 화면에서 나오는 장소, 차, 옷, 행동에도 관련이 있다. 맨 처음의 테디가 죽는 장소와 지미가 죽는 장소는 같다. 나탈리는 주인공을 처음 만날 때 주점에서
'그 경찰이.....'
'당신의 상태에 대해서 말을 했어요.'
  대사에서 보면 나탈리는 테디를 알고 있었다. 그런데 테디는 나탈리가 자신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레너드는 차와 옷을 죽은 지미 그랜츠에게 빼앗았다. 레너드는 이런 것을 기억은 못한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지미가 죽어서 찾고 있었던 '도드'에게 쫓긴다. ‘나탈리가 도드에게 차 이야기를 했어요’. 하는 것의 진실은 '그 녀석이 지미의 차를 빼앗고 옷도 빼앗았어 혼내줘'이었을 것이다. 이에 도드가 주인공을 건드린 것이다. 또한 지미를 죽일 때 테디를 찾는 것으로 보아, 지미와 테디는 알고 있는 사이였음을 알 수 있다.
 즉, 여기서도 정보의 연결이 드러난다. 지미 그렌츠와 나탈리는 연인관계이고 도드를 알고 있다. 나탈리는 테디를 아는 눈치이고 지미 그렌츠도 테디를 안다. 그러므로, 도드도 테디를 알 가능성이 높다.
 이것을 생각하고 영화를 보면, 테디가 지미 그렌츠를 주인공을 이용해 죽였고, 나탈리는 테디가 자기까지 죽일 것을 염려해 레너드에게 접근, 그를 시험해보기 위해 눈엣가시인 같은 편 도드를 내쫒아 보고, 주인공이 이를 잘 수행하자 본 목적이었던 테디를 죽이도록 유도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정리를 해보면 테디와 나탈리,지미,도드는 한 패거리였고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주인공을 이용한 것으로 설명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드러난 정보의 연결의 하나의 예시에 불과하다. 영화는 등장인물의 대사나 행동을 신뢰할 수 없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그 관계가 명확하게 알 수 없다. 관객은 영화를 보며 인물의 이모저모를 둘러보고 앞에 이야기한 예시처럼 추측해야 한다.  추측만이 가능한 단서를 던져주고 있기에 어느 것이 사실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나, 앞에서 든 예시처럼 ‘이들은 모두 한패이다’와 비슷한 ‘중심축’을 잡아두면 자연스레 연결이 되는 구조를 가진다.

 컴퓨터의 한 파일 아이콘을 누르면 그 안에 들어간 파일이 뜨는 것처럼, 사진과 문신, 테디의 정보, 나탈리의 정보를 한 파일에 넣어둔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허나 이것은 하나에 연결된 것이 아닌, 다중으로 연결되어 있어 하나의 진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 두 가지, 아니 그 이상의 진실을 가리키고 있다. 
 감독은 단서와 기억은 확실하지 않으며 하나의 정보를 증명하는 것에는 다른 정보가 필요하고 정보라는 것은 언제든지 변형되고 바뀔 수 있기에 어떤 것이 옳다고 볼 수만은 없으며 끊임없이 생각하고 의심할 수 밖에 없다는 주제를 말하고 있다.



[추리][미스터리] 모든 것이 F가 된다. 자각과 F 책, 읽는다. 리뷰,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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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는 내용누설과 주관적인 해석이 있습니다.
 작품의 줄거리나, 결말, 반전 요소 및 작품 내용이 있으므로, 내용 누설을 원하지 않는다면
 뒤로 가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또한 주관적인 생각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어디까지나 참고로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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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된 문장은 출판사 '한스미디어'에서 2015년 신판에서 인용했습니다

인용 애니메이션 대사는 'RedBLizZard'님의 자막을 인용했습니다

자막님의 블로그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blog.naver.com/redblizzard



 리 히로시의 '모든 것이 F가 된다'는 모리 히로시의 데뷔작이자, 그의 시리즈 소설인 S&M 시리즈의 서두를 장식하는 작품이다. 1996년에 발매된 이 작품은 모리를 '이공계 미스터리 추리소설가'로 이름을 굳히게 했다.

 S&M 시리즈가 1998년 10월 '유한과 극소의 빵'으로 끝나고 이후 8년 뒤, 첫작인 'F'는 A-1 픽쳐스, 노이타마나에서 애니메이션화 된다. 감독은 원작의 흐름과 줄기를 그대로 따라가면서 현대에 맞게 시간적 배경이나 세세한 기술적인 묘사를 바꾸고 소설의 내용과 인물을 재해석해, 없었던 내용과 연출을 추가했다. 결과, 원작과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되었긴 했지만 이는 원작이 가지고 있던 주제를 잘 살리는 것에 큰 역할을 했다.

...아마 몇 사람을 더 품고 계시겠죠? 여러 사이카와가 안에 있을 테지요. 당신의 머리 회전이 늦는 것은 당신 안에 있는 인격의 독립성에 기인하고, 판단력이 약한 건 그 인격들의 세력이 균등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그 독립성이 뛰어난 객관성을 만들었어. 세력의 균등함이 예민한 지향성을 낳았어요. 당신은 여러 개의 눈을 가지고 있어요. 기적적으로 뒤섞이지 않았어. 아니. 진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다른 자신을 만든 거군요. 당신의 구조는.......나와 똑 닮았어.

사이카와: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하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아. 문제는 마가타 박사가 어떻게 생각했느냐지.
      모에: 어떻게고 뭐고, 부모님을 죽였다고요. 아무리 자유가 소중하다고 해도,
              그건 사람으로서 뭔가가 결정적으로 결여돼 있다고 생각해요
사이카와: 아니, 결여돼 있는 건 우리 쪽이야. 우리는 결여돼 있으니까 비로소, 인간성을 의식하지.
               애정이나 도덕 같은 규칙을 만들지. 그것을 지킴으로써 뭔가를 보충하려고 하지. 
       모에:애정이나 도덕은, 가치가 없는 규칙일 뿐이라는 건가요?
사이카와:그렇게 말하진 않았네. 마가타 박사의 윤리관과 우리의 윤리관은 다르다는 말이야.
      모에:그리고 박사님 쪽이 올바르다고요?
사이카와: 올바른지 아닌지는 몰라. 단지, 마가타 시키만큼 순수한 인간은 없어.
      모에: 순수? 제가 보기에는 자기 멋대로고 까다로운 사람으로밖에 안 보여요.
사이카와: 인간은 본래 까다로운 생물이지. 어렸을 때는 누구나 하나의 인격이 아니었을 걸세.
             항상 모순되고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방식으로 생각했어.
             하지만 성장함에 따라서 그것들을 통합하고 하나밖에 없는 육체에 맞춰서 말이지.
             그리고 결국 모두 육체에 얽매여서 살지. 그건 몹시 부자유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하지만 마가타 박사는 누구나 그렇게 하듯, 인격을 하나로 통합하지 않고,
             독립된 인격을 여럿 가지고 있었어. 난 그게 순수한 인간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네.
             가장 인간성이 풍부하다고 할 수 있는 건, 마가타 시키 박사 같은 형태야.
      모에: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부모님을 죽이지 않아요
사이카와: 자네와 마가타 박사는 다른 인간이야. 똑같은 식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어.
              타인과 똑같이 느끼는 건 불가능해. 설령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말이지. 그러니까
       모에:그러니까 뭔가요?
사이카와:이제부터 어떻게 할지 자네가 스스로 정하게.

 여러 명. 분열되어 있는 인간성. 마가타는 사이카와를 분석하며 자신과 닮았다고 말한다. 눈여겨 볼 만한 단어가 몇몇 있다. 독립성, 균등함, 객관성, 지향성, 여러 개의 눈. 진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다른 자신을 만든다. 단어들은 '객관과 주관'으로 한 곳에 모아진다.
  객관적이지 못하다고 해서, 일반기준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그것을 '틀리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일반적인 객관은 것은 여러가지 주관과 윤리관의 공통적인 교집합에 지나지 않는다. '답'은 '어떤 기준에 의한 답'이다. '1+1=2'라는 식은 일반적인 십진법에 의해 옳으며,'1+1=32' 라는 답은 틀리다. 하지만 1을 16으로 두고 생각했을 때, 1+1=32이라는 것은 옳다. 1+1=2 는 틀린 답이 된다. '옳다. 틀리다.'는 하나의 기준에 의해 결정된다.

사이카와: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서는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겠지.
       모에: 결국, 박사님은 자기가 자유로워지고 싶었을 뿐인 거 아닌가요?
               그러기 위해서는 뭘 해도 좋다고 그렇게 생각했을 뿐인 거 아닌가요?
사이카와: 나는 마가타 박사가 아니야.
      모에: 하지만 선생님은 박사님의 마음을 아시는 거 아닌가요?
              선생님도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거 아닌가요? 왜냐면, 결여돼 있는 건 우리 쪽이잖아요?
              마가타 박사님은 누구보다 순수하잖아요? 선생님은 그런 박사님을 동경하시잖아요?
사이카와: 만약 그렇다고 해도 자네가 탓할 문제는 아닐세.
      모에: 저는 지금 무척 슬퍼요. 어째서 몰라주시는 거죠?
 사이카와: 어쩔 수 없어. 우리는 타인일세.


 애니메이션에서 나온 종반에서 모에와 사이카와가 마가타를 만나는 버추얼 세계는 다르다. 작품에서 버추얼 세계는 체험하는 사람의 뇌파를 통한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모에는 부모님과의 이별에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그녀에게 있어, 마가타의 생각인 '딸이 어머니를 죽인다.' 또는 '어머니가 딸을 죽인다'라는 생각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그녀에게 보이는 풍경은 취조실이다. 마가타가 저지른 일은 모에에게 있어서 죄를 물어야 하는 공간인 것이다. 하지만 사이카와는 다르다. 사이카와는 그녀가 저지른 행동을 할 수 있을 충분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도 마가타에게 죄를 물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사이카와는 마가타가 가진 순수한 자유에 대해 어느정도 공감하고 있고 이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이카와와 마가타가 있는 공간은 모에의 공간보다 비교적 자유롭게 그려진다. 두 사람에게 보이는 화면이 다른 이유는 명확하다. 바로 판단하는 기준이다. 모에는 비난하나, 사이카와는 이해한다. 하지만 동조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해하지 못하는 모에에게 사이카와는 말한다. 타인이기에 어쩔 수 없다고

"아니, 역시 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어째서 이해를 할 수 없느냐하면 제가 그렇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당신의 말이 옳을 지도 모릅니다."
"난 옳다. 당신은 옳지 않다. 결국에 올바르다는 개념 따윈 고작 그 정도예요.
  

"그럼 범인은 그 문을 통해 밖으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탈 수가 있었다는 뜻이야. 아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걸 보고 있었는데, 소리는 거의 나지 않더라고. 더군다나 그때는 노이즈 때문에 소란스러웠잖아? 복도에 나와 있던 우리는 마가타 여사의 시체에 온통 시선이 쏠려 있었으니, 그 틈에 엘레베이터에 탔다면......."

"잘 생각해봐, 11시에 초기화가 되면서 네트워크를 통해 정확한 시각이 전달됐다. 그래서 12시에 늦은 시계를 바로잡기 위해 1분씩 시간을 앞당겼다. 그랬더니...... 딱 그 1분의 데이터 파일만 빠지고 말았다. 여기까지는 추리를 했나?"


 작품 속의 사건이 밀실살인인 점과 사건의 진실이 계획된 일이었다는 점은 이런 부분에서 흥미롭다. 일반적으로 밀실살인이 주어지는 추리소설은 어딘가에 밀실을 깰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 또한 피해자가 범인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피해자는 작품의 끝까지 피해자이며, 밀실을 깨트릴 돌파구가 있다고 많은 작품들은 말하면서 수수께끼를 풀게 한다. 그리고 독자는 가해자에게는 피해자에게 있어 어떠한 원한이 있었다 라는 동기가 있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여기서 독자는 어떤 '약속' 다시말해 '기준'에 의거하고 있다. 독자는 그것이 작품에 적혀지면 안심하고 반대로 그런 것이 없으면 불안해한다.
 하지만 작품은 독자의 견해에 의문을 던진다. 논리적인 규결. 합리적인 동기와, 합리적인 결말, 이것은 언뜻보면 당연한 것처럼 보이나 이는 독자의 자유로운 생각을 방해하고 있다. 모리는 작품으로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라는 일반인의 고정관념에 충격적인 결말로 의문을 걸며 '어째서 그렇게 되어야만 하지?'라고 묻는다.


 초반에 나왔던 이 추리는 '감시 카메라가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다'는 전재로 깨지고 말지만, '시계가 늦춰져 있었다'와 '파일이 덮어쓰기가 되었다'라는 것으로 다시 정답이 된다. '컴퓨터의 시계는 당연히 옳다'와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다'라는 고정관념이 정답을 흐리게 했다. 기준에 기대지 않았다면 더 빨리 진상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모리는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라는 독자의 관념의 환상을 통해 의문을 만들어내고 이것을 깨부수는 것을 통해 독자가 답에 이르게 한다. 작품 끝에서 이러한 면은 더 부각된다.

  첫 시간에 교수님이 이렇게 물었지. '다들 예습은 해왔나?' 그래서 솔직하게 안 했다고 맨 앞에 있던 내가 대답했지. 그랬더니 교수님은 '그럼 다음 주까지 제 1장을 예습해오도록' 이 말만 남기고 강의실을 나가버리셨어.(중략) 니시노소노 교수님은 수업을 시작하시면서 이렇게 물으셨어. 모르는 부분은 없었나? 하고.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았지. 그러자 교수님은 다 안다면 내가 가르쳐줄 게 아무것도 없군. 하고 말씀하셨어. 다음 주에는 제 2장을 해오라고 하시고서 강의실을 나가셨지.(중략) 그 다음 주에는 말이야. 난 진지하게 책을 읽고 질문거리까지 생각해뒀다고. 그리고 질문을 했어.(중략) 아냐, 니시노소노 교수님은 무려 4주에 걸쳐 내 질문에 답변해주셨어. 매주 매주 내 질문에 대한 답을 줄줄 얘기하셨어.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주에는 이렇게 말씀하셨지. '자, 이상이 사이카와 소헤이의 의문에 대한 내 나름의 답이다. 다음 질문은 없나? 2장까지 공부하다가 또 모르는 건 없었나? 하고.....'

마가타 시키: 물론이에요. 모르는 게 있으니까. 사람은 상냥해질 수 있는 거예요.
     미치루:  어째서죠.
마가타 시키:모든 걸 알고 있으면 아무것도 시험해볼 수 없어요. 아무것도 시험하지 않으면 새로운 일은
                아무것도 안 일어나요. 사람은 모르는 것의 답을 알고 싶다고 생각하며 추구해요.
               그 안에 상냥함이나 그리움, 기쁨, 즐거움이 생기는 거랍니다.
      미치루: 저는 어머니께 언제나 묻고 있어요. 이렇게 답을 구하는 것만으로, 저는 상냥해질 수 있을까요?
마가타 시키:그러네요. 제가 없을 때도 언제나 물으세요.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을 때도 계속 물으세요.
                자신에게 스스로 묻는 거예요. 그걸 잊으면 안 돼요. 그게 당신의 상냥함이 되겠죠.


 사람은 처음 태어났을 때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백지상태로 자신만의 생각으로 사물을 판단한다. 그것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오직 자신만의 것이다. 하지만 이 생각은 점점 다른 사람의 생각에 치이고, 간섭받아 수정되고 고쳐진다. 모순되어 있던 것이 정리되고 합리적으로 바뀌었지만 그것은 이미 처음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자신만의 것이 아니게 되어버린다.

 "인간, 누구나가 어릴때는 천재, 어른이 될수록 평범해져간다"

 '숫자 중에서, '7'만이 고독한 거야.' '선'과 '악''진실'와 '거짓' '빛'과 '어둠'  사람은 보통 이런 양극의 개념의 틈새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으려 한다. 자신의 거처는 하나뿐이라고 믿으며 중간을 찾고, 타협한다. 천재는 그러지 않는다 양극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기에


  작품은 이것을 안타까워 하면서 '그렇다면''하다 못해'라고 운을 붙여 타인의 답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그것을 스스로 검증해보고 납득과 이해가 되는 지 생각해보고 행동하라고 말한다. 나아가,'진정한 천재란 무엇인가.'의 질문에 작품은 나름의 답을 내놓는다. 
 작품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천재는 자신만의 생각과 배운 생각을 온전하게 따로 놓고 서로를 검증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양쪽에서 모두 존재하기 때문에 제 3자 입장으로 볼 수 있다.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비교가 가능하다. 그렇기에 그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진정한 자유를 가지고 답을 결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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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는 도대체 뭘까. 대체 무엇이기 때문에 작품의 중심이 된 것일까. 단순히 작가 모리 히로시가 작중에서 사용한 트릭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소설 속에는 많은 장치가 등장한다.  F의 의미는 단 한 가지로 축약되지 않는다. F는 '자유''FREE'와 '끝''Finish'를 의미한다. 여기서의 끝은 삶의 끝, 죽음을 의미한다.

......오직 자기만을 위한 문제에 흥분하고, 자기만을 위한 정복감이 최고라고 믿었다. 순수한 학문은 끝이 없다. 도달하지 못했다는 허무함이야말로 귀중한 것이다. 그렇게 믿었다.
 지금도 그리 생각한다.
 하지만 사이카와는 자신이 변했음을 알고 있었다. 자신은 이제 자유로운 방랑자가 아니다. 말은 제한당하고, 행동도 제약된다. 허나 이 모든 일이 살아가기 위해서다, 라고


.....사이카와가 가장 흥미를 느꼈던 부분은 마가타 시키 박사의 발상이다. 그녀는 자기 딸을 죽이고 자유의 몸이 됐다. 하지만 박사가 이해하는 자유라는 개념이 사이카와의 그것과 같을리는 없으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자유였단 말인가?(중략)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서라는 낮은 수준의 이유가 성립되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아니, 과연 그녀의 진짜 동기를 평범한 사람이 이해나 할 수 있을까.


"당신은, 죽기 위해서, 그 일을 벌인 거로군요?"
"맞아요.... 자유로 들기 위한 의식입니다."


  마가타는 생각했다. 진정한 자유는 사실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 맛볼 수 없다. 아무리 자유롭다고해도 사람은 어딘가에 얽매여 있다. 돈이 많다고해서, 힘이 세다고 모든 것을 얻을 수는 없다. 사람은 죽음에 얽매여 있고, 육체에 얽매여 있다. 살아있는 동안 모든 얽매임을 푸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가타의 애초 계획은 자신이 죽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얽매이고 있는 것을 전부 걷어내려고 했다.

16진법의 세계에서는 한 자리의 숫자가 15까지 존재해.
10진법에서 10은 두 자리 수야. 10을 1과 0으로 표현하듯이 16진법에서는 16이 되어야만 비로소 두 자리 수 10이 돼지. 문자가 9까지밖에 없으니 16진법에서는 써먹을 수가 없겠지. 그래서... 보통 10에서 15까지의 숫자를 알파벳 A,B,C,D,E,F로 표기해. F란 10진법의 15를 뜻하지. 10진법의 9와 마찬가지로 F는 16진법에서 가장 큰 한 자리 수야."

 'Fifteen'이라고 사이카와는 F를 풀이한다. 정리하자면, 16진법은 자릿수 하나가 0부터 15까지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10법은 0부터 9까지 밖에 없기에 편의를 위해 10은 A, 11은 B, 12는 C, 13은 D, 14는 E, 15는 F로 표현한다. 따라서 12는 16진수로 C가 되고, 16은 16진수로 10이 된다. 억지로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이렇다.'10=A=4 11=B=5 12=C=6 13=D=7 14=E=8 15=F=9' 16=(더 이상 문자로 쓸 수 없음).
 
 9가 십진법으로 쓸 수 있는 큰 숫자이듯이, 15는 16진법에서 가장 큰 숫자다. 나아가,'65535'은 16의 4승이며, 16진법을 사용하는 프로그램이 받아들일 수 있는 최대치로, 'FFFF'가 된다. 이 다음의 숫자는 프로그램이 받아들일 수 없다. 16진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끝인 것이다. 'F= Finish'는 여기서 다시 강조된다. 끝에 다다르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완결'이다.
  마가타 박사는 여기까지 생각해 F가 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자신이 애초에 생각했던 완결의 F가 되지 않았다 
 작품에서 드러나지 않지만, 원작과 애니메이션에서 알 수 있는 정보를 조합해 추측하면 다음과 같다.

  마가타는 자신만의 고유의 생각과 남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을 융합하는 보통 인간의 사고가 아닌, 양쪽 다 이해할 수 있는 사고의 능력이 있었다. 정점에 도달한 그녀는 모에나, 사이카와와 같이 동경하고 목표로 할 존재가 없어 완결된 존재가 되려고 했다 (Finish) 그것은 그녀가 생각하기에 아무것에도 얽히지 않는 '죽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마가타는 완결이 되는 것을 단순히 죽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죽었다'라는 개념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예정이 틀어져 버렸다. 미치루는 자신은 어머니가 될 수 없음을 알았다. 미치루는 마가타 시키의 사상과 생각만을 배웠으나 이해는 해도 동조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미치루는 이야기했다. 자신은 어머니가 될 수 없다고. 마가타는 자신의 예상과는 다르게 일이 되어 놀랐다. 이때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알고 연구실 밖의 세상이 궁금해졌다.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세계에 자신이 모르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F의 다른 의미가 생겨난다. 바로 미래,'Future' 다. 마가타는 죽는 것으로서 완결되려고 했다. 자신에게 다가올 미래를 없애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죽지 않고 연구실에서 세계로 나갔다. 그녀는  다가오지 않을 시간이었던 '자신의 미래'를 사용하기로 했다.

  위의 과정에서 그녀의 딸의 죽음은 어떻게 진행되었는 지, 이 부분은 솔직히 말해 생각하기 어렵다. 미치루는 강제로 희생되었을까. 아니면 대화를 통해 납득하고 스스로 죽었을 까. 어느 쪽인지 알 수 없어 아쉽긴 하다. 원작자와 감독은 어떻게 생각했을 까. 흥미가 가는 부분이다.

    명의 주요인물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영상. 세 사람이 돌아가면서 흥겨운 음악 분위기에 맞춰 춤을 춘다. 영상은 로토스코핑으로 흘러가는데 근래에 들어서 보이던 OP영상과는 색다른 느낌이 나고 있다.
 영상과 가사는 인물의 내면을 잘 살리고 있다고 생각된다. 노래에서 자주 나오는 내용은 토킹, 대화다. 당신과 아침까지 이야기 하고 싶어. 너의 이야기를 들려줘.' 이는 배일에 쌓여 있는 수수께끼의 인물 마가타 박사를 두고 말하고 있다. 사이카와와 모에는 마가타 박사를 잡으려는 동작을 보인다. 사이카와는 마가타 박사를 동경하고 있으며 그 사고방식을 이해하려고 한다. 모에는 이러한 사이카와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두 사람의 사고방식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풀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런 성격으로 볼 때 두 사람이 마가타 박사를 잡으려는 행동은 작중의 내용을 잘 담아낸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엔딩의 영상미도 오프닝 못지 않게 독특하다. 리눅스의 부팅 로그와 로그인 화면, 콘웨이의 생명게임, 회로와 보드등 작중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컴퓨터 관련 요소로 가득하다.
 '무기질인 방에서 고독한 7', '계산하고 있어, 고독한 7''그저 방치하기만 해도 되는 가?' '당연한 것을 의심해라' '정답은 언제나 네가 정하는 거야' '빠져나가야만 해. 상대적 가치를' 가사는 7과 고독을 중심으로 흘러가며 다수와 개인의 이해, 상식과 비상식의 괴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한  '사일런트 메저리티'로 본편에서 계속 언급되는 객관성, 주관성, 도덕성의 정의, 상식과 비상식등의 복잡하게 얽혀 있는 '다수'와'개인'개성'에 대한 것을 강조해 드러내고 있다.



  우스겟소리로, 이 작품은 대학생이 읽어야하지 말아야할 소설 중 하나라고 불렸던 적이 있다. 쌍권총도 아니고 전과목 전부 F라니. 뭐, 모든 과목을 F가 되기는 쉽지 않지만. '일부러' 노리고 했다면 모를까.
 F의 제목은 독자입장에서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온다. 독자는 '모든 것이 F'라는 어구를 보면, 뭐가 F가 되는 거지?' 또 'F는 어떤 의미가 있을 까?'라는 생각으로 책을 집게 되고 읽게 된다. F라는 키워드는 소설의 중심소재면서, 독자를 끌어들이는 강한 흡입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효과는 작품의 장르가 '추리에 의한 수수께끼풀이'라는 점에서 더 흥미진진하게 된다. 의문의 밀실살인사건,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사건의 연결점..... 독자는 F로 이끌려 소설 속에서 순차적으로 등장하는 사건의 진행을 통해 사건에 얽힌 F의 의미를 찾으려 하게 된다. 그리고 독자는 F의 진정한 의미를 알았을 때, 책을 덮게 될 것이다. 작품의 본격적인 내용도 F에서 시작되고 F가 밝혀지면서 끝난다. 독자의 독서도 역시 F로 시작되서 F로 끝난다. F는 작품의 시작이자, 끝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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